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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중심을 잡는 일
  • 안산신문
  • 승인 2021.12.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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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우리의 삶이란 수많은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는 과정의 연속이다.
 오르테가는 '타자와 공존하는 길이 야만과 결별하는 문명의 절대 요건'이라고 하며 타자성의 존중과 타자성의 습관화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남을 배려하기에 앞서 자신의 이익이, 자기 행복이 우선이며 타자보다는 자신이 우월하기를 소망한다. 또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다. 배려하느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경쟁사회 속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인식 때문이다.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우리는 과거의 황제보다도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세계는 발전하지 못한 채 상실의 시대를 맞고 있다. 진실과 거짓,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하는 변별력은 이미 경계가 모호해졌다. 자신의 선택과 믿음조차도 신뢰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 우리의 주변에 무력감과 허무주의가 만연되고 있다. 사실 세상에서 혼자라는 생각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재벌은 재벌대로, 인기 연예인은 연예인대로 소외를 느낀다.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혼자라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그러한 감정은 나를,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분명 우리는 무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의 기준, 사회적 기준.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살면 타인의 시선에 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는 일에 지나치게 종속되면 자신만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다. 세상의 기준을 충족시켜도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본래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와 관계 맺는 타인이 없을 때 인간은 자아가 상실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석존은 왕자로 태어나서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과 수행에 면려했다. 지금까지의 어떤 사람도 하지 않은 처절한 고행에 돌입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변의 많은 수행자는 기대가 컸다. '저렇게 지독하게 수행하니 반드시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하지만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고행, 난행만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석존은 수행을 포기하고 다른 수행에 면려한다. 여기에 석존의 위대함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명예와 체면보다 자기 삶에 중심을 잡는 일이 중요했다. 결국 석존은 무명에서 명지로 오달하게 된다.
 나는 일을 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 이 일이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늘 고민한다. 아닌 것을 알았을 때 바로 포기하는 결단력 그것을 잘하는 일도 능력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그 답을 찾으며 살다 보면 점점 그 답에 가까이 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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