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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안산신문
  • 승인 2022.01.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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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복복서가)

  ‘검은 꽃’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 조화(弔花)와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사 강연에서 구한말 멕시코 이민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 소개를 듣고서는 생각했다. 침략당한 민족의 처절한 이야기겠구나. 이런 지레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침략당한 민족의 이야기는 맞았으나, 처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역사 교과서를 읽는 듯한 담담함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 스스로 ‘만약 내 소설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검은 꽃’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가진 작품이고,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계의 인정도 받았다. 자칭 타칭 대표작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김영하답지 않은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하니 아이러니하다. 역사소설에 제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작가가 영원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역사소설이었다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평생 지평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이 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중략) 넘어갈 아리랑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는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 (103쪽)
  제1부에서는 조선인들이 멕시코 에네켄 농장주들의 핍박 속에서 계약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고, 제2부에서는 계약 만료 후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3부는 나라 잃은 백성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흐름만 본다면 이야기는 이산 민족의 수난과 극복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맞다.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문학(diaspora literature, 離散文學)이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현재 중국, 미국, 일본 동포와 고려인 등 700만 명이 넘어 세계 4위의 규모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창 시절 문학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는 수도 없이 디아스포라 문학을 읽어 왔다. 그 대부분은 피해자로서의 가슴 아픈 이야기거나, 한풀이라도 하듯 구원자인 영웅이 등장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검은 꽃의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영웅은 아니고, 아무도 고통에 울부짖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은 소설 속에서 당연시되는 기승전결의 서사구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민족이 아닌 개개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필연성도 당위성도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그들은 오히려 선택의 자유를 누렸다고도 볼 수 있다. 멕시코에 가기로 한 것도, 조선에 돌아가지 않기로 한 것도, 혁명군에 가담하기로 한 것도 다 그들의 선택이었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 거야.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 (347쪽) 
  무지한 왕과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대부들이 다스리던 망해가는 조선왕조를 버렸지만, 이번에는 유카탄 지평선의 황막함과 공허를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모른 체해 왔던 진리를 되새기게 해준다. 사람은 모두 죽고 왕조는 모두 멸망한다는 것. 이 점에서 감상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은 미시사(微視史)적 이야기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말했다. “검은 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에요. 검은색은 모든 색이 섞여야지만 가능한 유일한 색으로 남녀노소, 계층, 문화, 인종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꽃이라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겠죠.” 결국 자유와 화합을 꿈꾸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유토피아는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검은 꽃 한 송이를 피우고 있다.

김현숙<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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