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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28>나의 바위해안 이야기
  • 안산신문
  • 승인 2022.01.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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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쿠버의 어느 헌책방에서 산 ‘바위해안 생태학(The Ecology of Rocky Shores)’의 초판본으로 이 분야에서는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함께 갔던 외국 과학자들이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부러워했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바위와 조수웅덩이가 있는 바닷가는 해안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곳이다. 모래해안도 자체적으로 생물 종류들을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 어딘가에 숨어있어서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빈 조개껍데기가 보게 된다. 자갈해안에서는 이곳에서는 생물들이 살기가 쉽지 않다.』 - 이엠 스티븐슨(E.M. Stephenson)의 책 ‘해안의 자연주의자(The Naturalist On The Seashore’에서 인용 -

   나의 바위해안 이야기

   잊힐만하면 생각나는 것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다. 누구에겐 오래전에 헤어진 애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고향 집일 수도 있다. 필자에게 묻는다면 하나만 고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만 고른다면 이리저리 생각해보면 파도치는 바위해안이 떠오른다.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하고 비교적 평탄한 바위해안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지만 깎아지른 바위 절벽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바위해안을 구성하는 바위의 생김새와 크기 그리고 경사도와 해변의 위치에 따라 생물 종류와 구성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바다생물들을 찾아볼 수 있고 특히 해조류가 번성하여 동식물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이 다른 해안과 구분된다. 물론 모래해안과 펄이 우세한 갯벌해안도 배후에는 식생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파도나 물결에 너울거리는 해조류는 없다. 이렇게 역동적이고 신기하게 생긴 생물들이 가득한 해안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필자가 바다를 “왜 좋아할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에는 바로 바위해안이 있는 것이다.
   해양생물학을 하게 된 동기도 스쿠버다이빙을 배워서 물속에 들어가 보니 물이 너무 좋아 서다. 온종일 놀아도 질리지 않았다. 그랬던 곳이 남해안의 욕지도와 비진도 해안이었고, 강원도 강릉 해안이었으며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와 강원도 원주시 부론 강물 속이었다. 물론 대성리와 부론은 민물이지만 바다와 같은 분위기가 있었고 서울에서 가까워서 돈이 없는 학생에게는 다이빙 연습의 최적 장소였다. 더 커서는 제주도 서귀포 해안에 있는 문섬 일대였다. 예를 들어보자. 대성리면 서울에서 버스나 기차를 가는 북한강 변으로 말하는 지역으로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나기 바로 전 지역이다. 강을 바라보면서 기차여행을 하던 노선, 경춘선에 속한 역이 있는 곳이어서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은 대학생을 엠티 성지였을 정도다. 주말에 기차를 타면 젊은 열기로 가득하였고 기차 칸에서는 기타와 노랫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필자는 오로지 물속 생각뿐이었다. 대성리 강변에 작은 에이 텐트를 치고 거주(?)하면서 물속에서 놀았다. 그러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집으로 가 쌀과 김치 그리고 약간의 채소를 가지고 와 머물기도 했다. 이렇게 이곳과 인근 팔당과 남양주의 조안면 삼봉리를 다니며 체력과 다이빙 기술을 키우고 익혔다.
   한 번은 친한 후배와 둘이서 비진도에 갔었다. 대학생 시절을 우연히 들린 곳인데 사람도 적고, 해안이 너무 아름답고 배를 타지 않고 다이빙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라 점 찍어 두었었던 곳이었다. 섬은 두 개의 산을 이어 놓은 모습이었다. 마을은 큰 북쪽 봉우리 자락에 있었고 좁은 해안이 다른 봉우리 쪽으로 이어졌다. 해안 북쪽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반대편은 큰 바위가 많은 해안이었다. 남쪽 해안은 수심이 적당해서 해안에서 꽤 멀리까지 10m 이내였다. 그러면 공기탱크를 매지 않고도 스킨 다이빙(자신의 호흡량만큼 하는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국에 다이빙 가게가 드물었다. 그러니 서울에서 무거운 개인 탱크에 공기를 넣은 후에 대중교통으로 들고 가야가야 하니 아껴 써야 했다. 한 개면 수심 20m에서 40분 정도 쓰니 얕은 곳에서는 공기를 안 쓰는 다이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간단한 점심 먹거리와 물을 가지고 나가 10시부터 오후 네다섯 시까지 바닷속을 다녔으니 체력이 참 좋았을 때였다. 물속에 볼거리가 많아서였는지 지루한 줄을 몰랐다. 이곳에서 재야의 다이빙 고수도 만나고 랜턴도 없이 야간 다이빙을 하다가 배 밑에서 못 나올 뻔했던 일 등 지금도 그리운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함께 했던 후배는 지금 제주대학교 해양학과 교수다. 위에서 소개한 두 곳은 경비가 가장 적게 들면서 최고의 다이빙 연습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좋아했던 일도 연구소에서 하기 어려웠다. 연구원 시절에는 일을 만들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다이빙하는 과학자 선배들이 있었으나 일이 생기면 현장 일은 거의 필자가 맡아서 하였다. 나중에 생태 연구는 아니었어도 현장 나가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예를 들면 ‘육지와 제주도 간 수중 광케이블 공사’, ‘해군의 어뢰 탐지기술 개발’, ‘키조개 자원 조사’, ‘진주조개 양식 연구’, ‘동해안에서 연어 양식 어장 설치’ 등등이었으나 정작 바위해안 생태계를 연구하거나 조사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배 연구원으로부터 서해안 섬의 바위해안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길 한곤 준비를 지시하였다. 신이 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막막하였다. 바위해안 생태학을 물론이고 조사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전문지식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당시에는 바위해안 조사는 주로 해조류 학자들이 많이 하여서 동료 해조류 학자에게 배우고 이런저런 자료를 뒤지며 독학을 하였다. 연구책임자인 선배 과학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도 뭔가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연구소의 유일한 연구선인 반월호를 타고 10개 섬을 조사하였다. 격렬비열도에서부터 가거도(소흑산도)까지 주로 외곽의 섬을 찾아갔다. 이때 우리 바다가 비로소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그때 일지를 자세히 쓰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기록을 다 뒤져봐야 하겠지만 1984과 1985년 일이었던 같다.

그동안 수집한 바위해안 생태학에 대한 주요 서적들이다. 필자의 사무실의 책상 의자 뒤편 책장 중에 두 칸을 차지하고 있다.

서해안 섬 조사 이후에는 지식의 부족을 자책하며 관련 책들을 찾기 시작하였고, 저명한 학자들의 이름들을 파악해 나갔다. 국내 대학 도서관에 있는 자료들을 추적하였는데 주로 부경대학교(당시 부산수산대학교) 도서관에 해양연구 자료들이 가장 많았다. 출장 갈 일 있으면 업무를 마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자료를 추적하였다. 찾은 자료는 그곳에서 바로 복사를 하여 가져왔다. 그렇게 모은 지식으로 2차 바위해안 탐사라고 할 수 있는 남해안 10개 섬 조사를 대비할 수 있었다. 1987년과 1988년에 있었던 조사에서 이전 조사보다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1년에는 필자가 주 연구책임자로 ‘남해안 암반에 서식하는 저서생물상’이라는 보고서를 낼 수 있었다. 이후에 여러 조사에서 바위해안 조사가 추가되었고 필자가 그 일을 주도하게 되었다. 해안에 건설되는 원전이나 화력발전소 건설 환경조사를 하기 위해 영종도, 태안, 영광, 감포, 울진 등등에서 여러 곳의 조사를 통해서 경험이 축적되었으나 마음고생을 해가며 조사방법을 정립해 나갔다. 그리고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하여 제주도와 양양의 조도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 등을 찾아다녔다. 역마살 인생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바닷가 책방 만들기라는 꿈도 그런 떠돌이 연구 여행 중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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