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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29>박사후과정으로 떠난 호주에서 일 년 살기
  • 안산신문
  • 승인 2022.01.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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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가장 소중하게 인용된 책 ‘동해(일본해)의 성립’이다. 1977년에 출판되었다.

   『빅토리아의 100개가 넘는 국립공원과 주립공원 그리고 자연보전지역으로 된 보호되는 면적은 주 전체의 12%가 넘으며, 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복합적인 관리체계 중에 하나다. 이 시스템은 우리의 매혹적인 자연경관 열대우림에서부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에 이르기까지, 거센 바람으로 바닷물이 휘날리는 해안과 모래사장에서부터 눈 덮인 봉우리가 있는 높은 산까지, 철새들이 가득한 습지에서부터 드넓은 화산 평원까지를 보호한다.』 - 호주 빅토리아(Victoria) 주의 신문사인 디 에이지(The Age)가 편집하고, 주 자연자원보전국에서 출판한 ‘빅토리아 최고의 아웃도어’에서 인용 -

   박사후과정으로 떠난 호주에서 일 년 살기


   1993년 2월에는 입학 5년 만에 해양생태학 분야로 해양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직장인 연구소를 다니다 보니 대학원 공부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 연구소에선 출장이 많은 보직을 맡았던 터라 눈치껏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고, 서울대학교에서는 직장 휴직을 원했다. 해양학과의 분위기도 그랬다. 사실 호주나 영국으로 유학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으나 마지막에 남극 팀에 합류하지 않으므로 해서 차질이 생겼다. 이미 서울대학교 동물학과 진학이 한번 실패했던 터라 국내에서 공부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도교수께서 권유를 해주셔서 다시 도전하였으나 조건은 역시 직장을 관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일푼으로 막 결혼한 상황에서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해양연구소는 나의 꿈이었고, 하던 일도 갑자기 그만두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미친 척하고 직장과 학교에서 무언의 압력을 견디기로 했다. 수업도 가끔 빠지고 시험도 추가로 치르면서 2년 만에 수업은 모두 마쳤다. 대학원 동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다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보이지 않은 배려와 보살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했다. 너무나 빠듯한 살림엔 학비를 줄일 수 있어서였다.
   이후 3년을 일하며 논문을 썼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며, 수많은 생물표본을 보고, 또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바다에 대한 이해가 잘 되었고 그 바다의 특성에 대해서도 나름의 정리가 되었다. 한국 해역의 바닥에 사는 연체동물의 분포에 대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연체동물에 관한 많은 논문을 수집했다. 우선 바닥에 사는 작은 연체동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논문이 특히 필요했다. 일본 해안지방에 있는 해양이나 수산연구소의 보고서까지 모았다. 유학을 가 있는 선배나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외국 희귀서적을 파는 서점에 주문해서 사기도 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국내 도서관들도 뒤졌고, 영국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도서를 빌려 복사를 하기도 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서적 중 하나인 동해를 자연사적으로 자세히 저술한 ‘사부로 니시무라(西村三郞)’의 ‘일본해의 성립(日本海の成立)’이라는 책이 있었다. 즉 동해를 너무나 잘 정리한 책이었다. 일본어를 다 이해하기가 어려워도 책의 내용을 반드시 알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전 세계의 작은 바다를 다룬 책에서 동해를 맡아 영어로 쓴 글로 책의 개요를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곤 언젠가 이 일본 책을 번역한 다음 내 논문을 책으로 낼 때 제대로 참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1990년대에는 과학재단에서 박사학위 수여자들 대상으로 국가 장학금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다. 외국에 가서 일 년 공부하게 지원하는 제도였다. 호주 빅토리아 주 지롱(Geeling)시에 있는 디킨대학교(Daekin University) 생물화학과에 초빙교수 겸 박사후과정으로 ‘개체군유전학’이라는 주제로 신청을 하여 선발되었다. 체재비를 지원해 주었다. 1995년 2월에 호주로 가족과 함께 떠났다. 호주는 모든 대학교가 국립이어서 대학교의 직원이 되면 교수클럽에 가입할 수 있고, 차량 대여와 기름값의 일정 부분 할인하는 수혜도 받았다. 학교에서 가까운 토케이(Torquay)라는 마을에서 집을 구했다. 학교에서는 종일 현미경을 보고 유전자 증폭 실험을 계속해야 했다. 주제에 대해 큰 의욕을 가지고 왔었지만, 왠지 실험실 연구가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이면 인근 빅토리아 해양연구소와 부속 디스커버리 센터(Discovery Centre)로 가 환경교육 현장 봉사를 하였다.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해양환경교육과 생태관광의 개념과 해양교육 방식을 익힐 기회가 있었다. 또 디킨대학교 다이빙클럽에 가입하여 여러 곳으로 다이빙하러 다녔다.

집 책장에 있는 호주에서 구한 책들인데 지롱의 중고서적을 파는 서점에서 구한 것이고 일부는 환경교육 교재 겸 작은 도감들이다.

   지롱 지역은 인구가 약 10만 정도로 호주 전체에서 아홉 번째로 큰 도시였다. 주의 주도인 멜버른과는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토케이는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관광객이 꽤 찾는 지역이었다. 이곳의 벨 비치(Bells Beach) 해안은 파도가 세어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서핑과 아웃도어 분야에서 상징적인 브랜드인 립컬(Rip Curl)과 퀵실버(Quicksilver)의 발상지이어서 이 동네의 별명이 ‘서핑 파라다이스’였다. 학교까지는 차로 20분 정도였고, 지롱 시내는 버스로 30분이었다. 시내로 나갈 때는 주로 버스를 탔다. 지롱 지역에는 토케이와 같은 작은 동네들이 많았는데 동네마다 신문이 있었다. 일종의 소식지이자 관광안내서 역할을 했다. 지롱의 도시 소식지는 꽤 두껍고 맨 뒤에는 색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중고서점(second hand bookstore)’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찾아가 보니 ‘리드 힐러 북샵 지롱(Read Heeler Bookshop Geelong’이라는 책방이었는데 책들이 많았고 주인은 친절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간을 내어 그곳을 찾아 책을 사곤 했다. 나중에 주인이 단골로 여겨주었었다. 얼마 전에 책 ‘숲의 도시’를 집필 중 참고서적들을 뒤지다 보니 1978년에 출판된 책 ‘무한한 도시들(Cities Unlimited)’이 나와 살펴보니 호주에 살 때 바로 그 중고책 서점에서 산 것이었다.
   대학 도서관에는 필자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야, 특히 ‘바위해안 생태학’에 관한 책이 있어 자주 가서 몇십 페이지씩 복사하여 나중엔 전권을 다 복사하기도 했다. 새로 사기도 어렵고 이미 절판된 책이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의 도서관이나 서점을 꼭 찾았다. 시드니에선 ‘호주 자연사박물관’에서 며칠 머물면서 일을 하였는데 이때 박물관 내의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였다. 또 여행을 다니면서 간 동네마다 안내서를 보는 대로 모았다. 대체로 새롭고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한편 디스커버리 센터에서는 환경교육을 하면서 환경교육 관련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알게 되어 교육 관련 책과 포스터를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료도 많이 구하였다. 이때 산 책과 자료는 족히 삼사백 가지는 되었다. 인생에서 자연보전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 년이었으며, 외국 학자들과 자연보전 활동가들의 철학을 보고 배우며 체험까지 하였었다. 호주에서 구해온 자료들은 지금도 필자의 활동에 중요한 지침이 되고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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