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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원<동화작가> |
바짝 말린 매화 꽃봉오리를 찻잔에 넣고 찻물을 따른다. 꽃봉오리가 화르르 열리며 향기까지 퍼진다. 향기는 눈과 코를 호강시키다 머릿속까지 맑게 만든다. 아직도 맹추위가 기세등등하지만, 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이 오고 있다. 남녘에서는 꽃망울 터트리는 매화나무 사진 보내기 바쁘다. 봄의 전령사 매화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등 남부지방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경남의 양산시와 하동군, 전남의 광양시가 유명하다. 3~4월, 매화 축제엔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올해도 매화 축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여는 지자체가 없다. 매화 숲에 서면 꽃향기로 마시지를 받는 느낌이다. 일상의 분분했던 상념들이 사라지고, 가슴까지 싸하게 가라앉혀 준다. 섬진강과 어우러진 매화 마을은 그야말로 산수화 속에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신선이 된 기분마저 든다.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고 하여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제일 먼저 꽃망울을 여는 게 매화이다. 특히 한겨울에 피는 매화는 설중매라고 부르며 선비들이 귀하게 여겼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유난히 매화를 좋아했다. 추운 겨울, 꽃봉오리를 여는 모습과 은은한 향기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를 하면, 머리에 매화 꽃대를 꽂은 모자를 썼다.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각별하다. 많은 시조와 함께 매화 분재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매화 분재를 매군(梅君), 매형(梅兄), 매선(梅仙)이라고까지 불렀을 정도이다. 임종 즈음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어라.”라는 유언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매화차를 마시며 매화 향기 닮은 정치인을 찾아본다. 눈 씻고 봐도 없다. 오히려 종주먹을 흔들어주고 싶은 정치인들만 수두룩하다.
미국의 어느 부부 이야기이다. 남편이 39세 때 소아마비를 앓게 되어 휠체어 신세가 된다. 남편은 삶의 나락에 빠지고 만다. “난 영원한 불구가 되었소.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한 마디가 남편을 나락에서 구했다. 남편은 그 후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을 이끌게 된다. 무려 4선까지 연임하며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그는 임기 동안 뉴딜정책을 통하여 미국을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를 나락에서 일어설 수 있게 만든 부인은 대통령 이상의 퍼스트레이디였다. 사상 최초 4선 대통령의 정치 생애를 돕고, 세계 인권을 위해 헌신한 영부인은 사후 13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념관에서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때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모델로 제시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은 거꾸로 가는 정책이었다. 부동산값은 끝없이 치솟고 세계에서 칭찬받던 원전은 고사시키고 말았다. 끝없는 낙하산 인사, 국민 갈라치기 등등 마지막으로 갈수록 불안감은 예서제서 터져나오고 있다.
2월 3일, 대선후보 4자 첫 TV토론이 국민의 큰 관심 속에 열렸다. 여야는 서로 잘했다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러나 실망만 주는 토론이었다. 내실 없이 그럴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후보들이었다. 게다가 유력 후보 부인들의 수상한 이야기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김건희 씨의 7시간짜리 통화 녹취록, 김혜경 씨의 황제 의전 논란과 법인카드 사용 등 뇌관이 터지면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설 것이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찻잔에 잘 마른 매화 꽃봉오리를 넣는다. 찻물을 붓는다. 다시 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섬진강변의 매화 숲이 일렁인다. 매화 향기 속에서 깔깔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도나도 행복한 모습이다. 그러나 잠깐의 착시현상이었다. 우리의 우울한 대선 정치판이 눈 앞에 펼쳐진다. 후보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운다.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을 존경했는지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 매화 숲에서는 꽃망울이 와르르 터지는데, 매화 향기 닮은 정치인은 언제쯤 나타나려나?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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