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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공감
  • 안산신문
  • 승인 2022.02.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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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공감 능력을 발전시키면 다른 사람과 집단을 보는 방식이 바뀌고 나아가 서로 교류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어떤 모임에서 지인이 서명해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청원서라고 했다. 나는 보통 지인이 부탁하는 서명은 내용을 들어보지도 않고 덜컥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지인은 ‘성 소수자도 자기끼리 행복하면 되지 왜 우리가 법으로 막아야 하냐?’ 하면서 서명을 거부했다. 갑자기 우리의 모임은 본질을 떠나 차별금지에 대한 토론회장으로 열을 올렸다.
 나는 이런 식의 토론에서는 웬만하면 입을 다문다. 나의 신념을 모두에게 이해시킬 재주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또 두 진영의 말이 다 맞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 소수자로 인해 인간의 생태계가 멸망한다고 하는 논리는 너무 비약적이다. 현대는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사회다. 서로 좋은 사람끼리 살겠다고 하는데, 싫은 사람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시걸 교수는 『사회적 공감』이란 책에서 사회적 공감을 “다른 사회적 집단 및 사람들의 삶과 상황을 인식하고 경험함으로써 이들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공감을 개인적 공감과 사회적 공감 모두를 포함하는 폭넓고 대단히 중요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개인적 공감은 대중적 차원이나 매체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공감’ 개념이며, 사회적 공감은 개인적 공감에 토대를 두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세상을 보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적 공감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와 외모가 다르고, 우리 주변에 살지 않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 카메라를 비유로 사용하면 이렇다. 클로즈업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은 개인적 공감이고, 광각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은 사회적 공감이다.
 몇 년 전 뉴질랜드 여행에서 만난 동성애자의 결혼식을 보고 친구와 많은 생각과 토론을 했다. 우리는 나의 자녀가 동성애자와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였다. 결론을 못 내렸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는 미혹이었으나 지금은 명확해졌다. 내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기에 아이가 행복하다는 길을 믿고 지지할 뿐이다. 결혼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도 공감하는 일은 쉬운 것 같지만 쉽지는 않다.
 사회적 공감에 대한 인식이 없던 어린 시절, 우리 골목에 레즈비언 부부가 살았다. 그들은 그 자체로 손가락질받고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어른들이 가까이하지 말라고 해서 골목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못했다. 어쩌다 말을 걸거나 인사만 해도 친구들이 나를 놀렸다. 아무런 피해도 안 주는데 너무 따돌려서 안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감은 권력자에게 영향을 미쳐 유익한 정책을 시행하게 만든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사회적 공감 능력이 향상될수록 더 행복한 사회가 됨을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시걸 교수는 『사회적 공감』에서 “공감 능력을 발전시키면 다른 사람과 집단을 보는 방식이 바뀌고 나아가 서로 교류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가령 특정 국가나 민족 집단의 분리된 시민이 아니라 세계 인류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타자에게 공감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줄어들 것이다.
 공감은 가변적이다. 어떤 사안이 나에게 국한되면 공감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공감하려면 그 본질이 뿌리내리는데 인식이 바뀌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는 행동을 시작하는 문을 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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