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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안산신문
  • 승인 2022.02.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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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는 곳을 중요하게 치부한다.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신도시와 구도시가 다르다. 사는 곳이 같아도 임대주택과 자가주택이 다르다. 재개발로 이득을 얻는 자가 있으면 그로 인해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하든 주류에 편승만 하면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는 공동체 의식도 인류애도 없다. 더 나은 곳에 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 「불과 나의 자서전」은 현대문학이 주목하는 작가 김혜진의 소설로 2020년에 출간됐다. 
 주인공 홍이는 남일동에서 태어났다. 재개발의 광풍마저 번번이 비껴가는 달동네, 가난한 이들의 최후 보류인 곳이다.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남일동에 살지만, 어머니는 홍이가 그곳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너는 그들과 달라’ 어머니의 이 말은 홍이에게도 같이 노는 아이들에게도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홍이는 어쩐지 그들과 같이 어울려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뭐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일까? 어린 홍이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들과 다르고 싶어 하는 홍이의 부모님은 가난한 이들이 사는 대명사인 그 곳, 남일동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남일동에서 산다는 이유로 받는 차가운 시선과 멸시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다. 
      누군가가 누군가에서 빼앗은 집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누군가의 불행과 슬픔을 목격한 대가로 싼 집을 구매할 때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알 리가 없었습니다.
 홍이의 부모님은 우연한 기회에 경매로 집을 샀다. 우연한 행운을 자신의 노력으로 치부해 버리는 부모님은 경매로 집을 넘긴 이들의 게으름과 무지함을 탓했다. 그런 부모님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본 홍이는 남의 불행으로 얻은 행운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홍이네가 산 집이 행정구역 조정으로 부촌인 중앙동에 편입된 일이다. 길 하나 차이로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남일동과 분리된 홍이네는 이제 행복이 보장된 삶을 살게 될까? 
 어쩌면 홍이네에게 찾아온 행운은 우리도 살아가면서 종종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순전히 운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함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치부하고 운이 나쁜 경우에는 사회의 탓으로 돌린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닌지 중앙동에서 중학교에 다니게 된 홍이는 ‘남토(남일동 토박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 이런 학창시절 따돌림의 기억 때문인지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동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챙겨준다. 결국, 같이 따돌림을 당하게 된 홍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병이 생기고 직장을 그만둔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따돌림 당하는게 두려워 그저 모른척하는데 홍이는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비겁한 건 그들이고 홍이가 용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피부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2년째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는 홍이는 남일동 제일약국에 약을 사러 갔다가 주혜를 만난다. 수아라는 딸이 있는 그녀는 미혼모인데 당당하고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별로 주눅 드는 일도 없다. 그런 주혜가 부러운 홍이는 수아를 돌봐주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또 한 번 재개발의 광풍이 지나간 을씨년스러운 동네, 남일동으로 이사 온 주혜는 형편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좀 더 편하게 살려고 애쓴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 가로등도 설치하고 동네 안쪽까지 마을버스가 들어올 수 있게 서명도 받으러 다닌다.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주혜가 늘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홍이는 그런 주혜를 보면서 남일동에도 희망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주혜의 바람대로 그녀는 공동체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홍이의 피부병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지나친 애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상처로 친구도 없는 홍이지만 주혜와 수아를 외면하지 못한다. 홍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심이다. 공동체와 어울려 살기를 바라는 주혜마저도 홍이와는 다르다. 홍이는 그녀의 부모처럼 주류에 편승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김혜진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고 냉소적이다. 하지만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시선이 있다. 우리는 차가운 시선과 멸시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받기 싫은 차가운 시선과 멸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뜨끔한 책이다. 

전인숙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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