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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32> ‘습지’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 안산신문
  • 승인 2022.02.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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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주제별로 나누면 ‘습지’ 분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사진의 책들은 그 일부이다.

   『습지에 대한 인식이 다양한 만큼 습지의 정의 또한 학문 영역이나 정책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정의와 개념을 종합하면, 습지란 “육지환경과 물환경의 전이지대로 생물의 생장기를 포함한 연중 또는 상당 기간 물이 지표면을 덮고 있거나 지표 가까이 또는 근처에 지하수가 분포하는 토지”를 의미하며, 식생과 동물이 그 일생의 중요한 시기 동안, 또 생활 근거를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 동안 물이 못을 이루거나 흐르는 장소다.』 - 구본학 등 10명(제종길 포함)이 집필한 책 ‘습지 이해’에서 인용 -

   ‘습지’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일 년간 한국을 떠나있는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아주 멀리 떨어진 외국 호주에서도 느껴졌다. 구체적인 변화의 소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왠지 돌아가면 연구 거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고, 박사후과정의 목적인 개체군 유전학 연구보다는 바다 현장에서 연구하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해양환경보전 분야가 와닿았으나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서 이 일을 해야지 하는 만 정한 상태였다. 다만 해양환경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어촌 주민들에게 전파해야겠다는 의지는 확실하였다. ‘해양 디스커버리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해양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 MPA)이나 서식지복원 연구가 우리나라엔 시급히 필요한 분야라는 인식하였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괴짜 해양보호구역 전문가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 소속 ‘리 해양연구소(Leigh Marine Laboratory)’의 빌 발렌타인(Bill Ballantine) 교수를 찾아가기도 했다. 연구소 인근의 유명한 해양보호구역 두 곳을 방문하고 해양보호구역의 필요성과 지정 절차에 관한 공부를 한 것은 습지뿐 아니라 필자의 해양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막상 귀국해 보니 ‘갯벌 보전’이 전국적인 화제로 떠올라있었다. 다른 주제와는 달리 이 주제는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이 컸고, 정부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할 때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습지 보전을 위한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가입을 앞두고 있고 난개발에 대한 환경문제들이 곳곳에서 발생하던 때라 자연환경 보전의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제기된 시절이었다. 마치 지금의 ‘기후변화’와 같았다. 그러나 ‘습지’가 무엇인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라 국가가 발 빠르게 습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또 해양수산부가 생기기 이전이어서 모든 습지 업무는 환경부에서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환경부에서 습지 정의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해양분야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람사르 협약’에서는 수심 6m까지의 모든 물이 존재하는 곳을 습지라고 정의하였다. 습지는 생물들의 서식공간이자 보육 장소이고 홍수 예방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태계다. 특히 하구와 해안의 잘피밭은 그중에서도 최고다. 그러나 국내에서 정하는 정의에는 ‘람사르 협약’의 정의를 바로 적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수심 6m이면 우리나라 해안 전역에서 어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을 들어 필자가 제안한 해안 습지에 대한 절충한 안이 국내 습지의 정의로 받아들여져 결정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습지는 단연 갯벌이었다. 이전부터 갯벌 간척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시화 간척사업에서 거대한 갯벌과 천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국민들의 관심이 갯벌로 모였다. 필자도 바로 옆에 바라보고 너무나 안타까워하던 차에 새만금 간척사업이 추진되고 있었으니 반대 뜻을 확실하게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위기에 놓인 갯벌을 지키는 것이 시급하여 누군가 앞장서야 했다. 이어서 갯벌 관련해 여러 모임에 초청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갯벌 보전을 설파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해양환경 보전에 대한 철학과 지식을 배우지 않았다면 해양생태학자라도 나서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갯벌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때마침 1998년에 해양수산부가 생겨나면서 갯벌이 주목받는 주제가 되었다. 마침 해양수산부 정책 수립에도 관여하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갯벌 정책, 즉 연안 습지 정책 과업을 떠안았다. 갯벌이 좋은 강화도에서 호주 디스커버리 센터의 센터장과 해양환경교육 전문 직원을 초청하여 국내 최초로 교육자 양성 훈련과정을 마련하였다. 그야말로 갯벌 보전에 완전히 뛰어든 것이었다. 보전 업무가 필자의 주 업무가 되었고, 그러자 여러 곳에서 자문과 교육 그리고 연구의뢰가 들어와 점점 바쁜 연구자가 되어 갔다. 1997년에는 람사르 협약에 가입하였고 2년 후인 1999년에 코스타리카에서 개최되는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는 준비도 해야 하는 일 등등으로 일에 과부하가 걸렸어도 즐거웠다. 습지와 갯벌에 대해 충분한 학습을 못 한 체로 국가정책을 수립해 나가는데 나름 자신감을 보였던 것은 호주에서의 경험과 순수한 열정이 있어서였다.

필자가 집필에 관여한 습지 관련 책들이다.

 국정감사가 열릴 때는 밤늦게까지 연구소 책상에서 대기해야 했다. 국감장에서 갯벌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해양수산부나 환경부 공무원들이 필자에게 보내고, 필자는 자료들을 모아놓았다가 정리를 한 후 필자의 생각과 예상을 포함하여 답변하였다.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그 생태를 밝혀내는 것이 평생의 과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습지라니?”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다가온 주제에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앞서 강화도 갯벌 연구과제를 하게 되었는데 연구비가 얼마 되지 않은 연구소 자체 과제였다. 앞으로 이 과제를 함께 할 연구진을 찾아 팀워크를 갖추었다. 지질학에서부터 조류생태학 그리고 생태관광에 이르기까지 약 15명의 연구진을 꾸렸다. 연구비에 비하면 거대한 연구조직이었다. 3년간 방대한 자료를 생산하였고, 갯벌 연구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연구원들도 잘 따라와 주었다. 그 연구 기간에는 일 년에 적어도 열 번 이상 섬에 갔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지역 주민, 특히 어촌계 소속 어민들과 환경 활동가들을 만나 갯벌 보전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접근 방식을 빌렸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추진되면서 전국 각지에서는 갯벌 보전과 습지보전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사들이 줄지어 개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전체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주장도 자주 했다. 이는 독일 등 북해 연안 삼국이 연안 갯벌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던 것을 본뜬 것이었다. 어쨌든 많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갯벌 보전 노력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고 강고한 연대 같은 것이 생겼다. 우리 집에서는 가족 전체가 새만금 사업 반대에 나섰다. 설명하자면 꽤 길지만 여기선 생략한다. 다음 연재에서 할 새만금 이야기에서 해 볼 예정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습지에 대해서 일어났고 어쩌다 보니 그 중심에 있게 되었다. 다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이끌어주셨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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