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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책 수집기<33>
  • 안산신문
  • 승인 2022.03.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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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새만금 간척사업의 허상을 보여주는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책과 각종 보고서는 물론이고 작은 메모도 모아왔다.

   『진봉 반도로 불리는 심포항 주변은 물이 들 때는 끝없는 바다였고, 물이 빠질 때는 드넓은 갯벌이었다. 바다와 만나는 강어귀는 풍성한 어장이었고, 만경강과 동진강이 부려놓은 질펀한 갯벌은 온갖 어패류와 조류가 서식하는 생명이 펄떡거리는 땅이었다. 심포항은 조개의 집산지였다. 일대에서 잡은 조개는 심포항에 모여 팔려나갔다. 포구 주변 조개구이 식당가 횟집은 활기가 넘쳤지만, 이젠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 최흥수가 쓴 여행기인 한국일보 [자박자박 소읍탐방] <7> ‘김제 유일 항구 심포항과 새만금바람길’에서 인용 -

   새만금 간척사업에 얽힌 뒷이야기들
   습지를 연구하다 보니 녹색연합에서 연합 내의 갯벌위원회 위원장으로 초청을 해주었다. 당시 국내 환경단체들은 갯벌 보전에 심혈을 기울일 때였다. 필자가 처음으로 환경단체와 공식적으로 일하게 된 때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녹색연합 법률팀에서 연락이 와 우리 가족과 미팅을 제안하였다. 미래소송을 위한 것이었다. 갯벌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연자산인데 개발로 없애려고 하는 것에 대한 소송, 즉 ‘미래에 이용해야 할 자산을 현세대가 사용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30세가 훌쩍 넘은 딸이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소송 대표 중 한 명이 되었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새만금 갯벌 간척을 반대하고자 자주 가는 현지 방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엔 삼보일배도 따라갈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소송은 기각되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만금지역을 간척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가졌지만, 새만금이 있는 전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큰 축복같이 될거로 기대했지만 말이다. 새만금지역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에 펼쳐진 드넓은 곳으로 수산물의 보고였다. 갯벌에서는 다양한 조개류가 생산되고, 철새들이 이동 경로에서 먹이를 찾아 거쳐 가는 기착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갯벌은 두 강으로부터 내려오는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하구 갯벌 전방의 큰바다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보육장이자 영양분 공급처였다. 이래서 하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태계로 주목받는 것이다. 어떤 나라도 하구를 통째로 막는 예는 없다. 육지가 해수면 이하인 네덜란드를 제외하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새만금방조제가 완성되고 나서 조개류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우리 국민이 먹는 조개류의 적어도 50% 이상이 외국산이 되어버렸다. 이젠 쌀도 남아도는데 농지를 위해 그 많은 금액을 들여 하구를 막아버린 결과가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보자. 왜 새만금에 몰입할 수 있는지. 필자는 귀국 후 갯벌을 공부하고 연구를 시작하자 전문 생태학자로 보이게 되어 1999년에 구성된 ‘새만금사업 민관합동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생태학자는 민간위원 중에 혼자여서 여러 가지 문제에 앞장서야 했고 왜 새만금사업이 되면 안돼는 지를 설명하는 논리를 제공해야 했다. 그럴 때 필자의 눈에 든 것이 ‘에스추어리(estuary)’, 즉 하구였다. 당시 생태학자들의 숙제 중 하나는 생태계의 가치를 비전문가들인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명쾌하게 설명해 낸 글이 있어 그 시기에 최고의 지침이 되었다. ‘로버트 코스탄자(Robert Costanza)’ 교수와 그의 연구 동료들이 1997년에 세계 최고의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지에 실은 논문이었다. 이 논문에는 하구의 가치를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그래서 하구에 대한 글을 계속 찾아 읽으면서 관련 서적도 사들였고, 대학원에서도 하구를 강의 주제로 정할 정도였다. 조사단에서 하구를 계속 언급하며 이 소중한 하구를 막는다는 말인가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구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할 만큼 두 강이 큰 강인가? 큰 강이라면 그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갯벌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방조제 밖으로 갯벌이 생기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전북도민들이나 대부분 어민까지 비록 어장이 사라지더라도 간척이 되면 금방이라도 전북을 먹여 살릴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을 깨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갯벌이 살아있던 한창 시절에는 위의 시작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심포항에 조개가 가득 찼었다. 백합과 죽합이 대표적이라면 동죽은 가장 많이 생산되던 조개였다. 어떤 때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볼 때도 있었다. 수산물이 대접받는 지금 그렇게 생산되었다면 어민들은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최근엔 어민들을 중심으로 새만금방조제 열어 바닷물이 크게 소통되게 해달라는 요청이 조용하게 번지고 있다고 한다.

환경운동연합에서 발간하는 잡지 ‘함께 사는 길’의 요청으로 새만금에 살았던 생명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필자가 새만금 갯벌을 위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하루는 필자가 다니던 한국해양연구소의 소장이 필자를 불렀다. “부소장과 함께 국회에 갔다 와요. 가서는 국회의원에게 대들지 말고 조용히 듣고만 와요.” 하며 지시를 하였다. 국회에서 새만금지역 국회의원을 만났다. 하구와 조개가 생산되는 하구 갯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먹혔는지 하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필자는 하구의 특성과 가치를 설명했고 코스탄자의 논문을 다시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꺼냈다. 국회의원은 화를 벌컥 내며 이런 엉터리 연구원을 가진 연구소의 예산을 자르겠다고 하였다. 부소장은 내게 답하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눈짓을 하였다. 다시 그는 그 논문에 새만금의 사례가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다.”라고 하자 내일까지 이 논문을 번역해서 가지고 오라고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물론 논문을 번역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서울농대의 선배 교수 한 분이 점심이나 하자며 초청을 했다. 대학 교수식당에는 다른 두 분이 함께 있었다. 간척사업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던 농공학과 교수들이었다. 함께 식사하던 중 한 분이 필자에게 “새만금은 한반도에 배꼽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을 이불처럼 덮어주어야 나라가 편해진다.”라고 했다. 기가 찼지만, 선배를 봐서 식사를 얼른 하고 바쁘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공동조사단의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토론회에서 조사단의 민간위원인 어떤 학자는 새만금의 경제적 가치를 언급하며 “새는 박제를 만들어 판매를 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라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간척사업을 찬성하는 측은 새가 포함된 생태계의 가치를 강조하던 주장을 한순간에 반격했다고 기뻐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북도청에 근무하던 한 국장의 발언이었다. “새가 밥 먹여 줍니까?”였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고 종교인들이 나선 ‘삼보일배’는 가장 극적인 반대 운동이었다. 모든 반대 운동이 다 옳은 것은 아니나 새만금 간척사업의 사업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확신이 있어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것이었다. 새만금 이야기는 나중에 군장 갯벌을 살리려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할 예정이다. 벌써 방조제가 완공된 지 15년이 지났다. 책장 여러 칸을 채웠던 보고서는 창고로 내려갔고, 단행본과 자료 일부만 책장에 남아있다. 책과 자료들은 대부분 새만금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과정에서 수집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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