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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한 하루
  • 안산신문
  • 승인 2022.03.3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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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 콜라트/흐름출판

시(市)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희망도서가 비치되었다는. 그 희망도서가 바로 이 책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문자를 받고서야 '내가 희망도서 비치를 신청했었지' 하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 책의 제목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안산시 도서관의 '희망도서 비치 신청'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시립 어느 도서관에도 없을 경우 신청할 수 있는데, 고맙게도 나는 그렇게해서 몇 권의 귀한 책을 읽어 볼 수 있었다. 시립 어느 도서관에도 비치된 적 없는 책을 내가 발견하고 비치되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에 더해 누구도 펼쳐 본 적 없는 새 책을 내가 제일 먼저 대출해서 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덤이었다. 게다가 그 책이 내 기대를 충족했을 때의 충만감이라니. 그런 두근거림으로 책을 펼쳤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어른 손바닥을 펼쳐놓은 사이즈의 하늘빛 책이었다. 한마디로, 아담했다.
 솔직히 지루했다. 어려운 단어나 표현은 어디에도 없는데 이상하게 문장에 집중이 안 됐다. 하품이 나오고 졸렸다. 바람을 쐬고 들어 왔을 때, 책갈피는 겨우 38쪽과 39쪽 사이에 꽂혀 있었다. 다시 책을 펼쳤지만 여전히 전개는 느렸고 문장은 밋밋했다. 또다시 하품이 났고, 이번엔 52쪽을 읽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 중 하나인 ‘리브리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그래서 이 작품의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 낯섦과 설렘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고 ‘옮긴이의 글’에 소개 되어 있다. 어떤 권위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문학상 수상 경력과는 상관없이, 나하고는 맞지 않는 작품이구나 하고 느꼈다. 반짝이는 문장들에 감탄했다는 번역자. 그렇다면 내가 느낀 지루함은 번역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은 어떨지 몰라도 번역서를 읽고 있는 나로서는 문장의 반짝임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번역자와 나 둘 중 하나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고 단순히 번역자의 문학적 감성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렇게 두 번째도 지루했다. 결과부터 밝히자면, 결국 나는 250여 페이지 분량의 –딱히 어려운 문장도 없는- 이 책을 읽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그만큼 끝까지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왜 끝까지 읽었을까? 
사실, 그동안의 독서 경험상 처음에 지루했던 책이 나중에 재미있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따라서 첫 지루함 이후 나는 이 책을 덮었어야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건, 내가 직접 ‘희망 도서 신청’을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기억나진 않지만, 직접 희망도서 비치를 신청할 정도라면 분명 그 동기가 강렬했을 것이다. 그것이 광고 문구든, 아니면 내가 신뢰할만한 누군가의 언급이나 추천에 의해서든. 그렇기에 ‘아니야, 무언가 있을 거야.’라는 미련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모두 좋다고 하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과도한 열등의식마저 스멀스멀 나를 괴롭혔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강하게 나를 지배했다. 최소한 비치 신청한 나는 끝까지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책임감, 또는 오기.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고 시(市) 도서관에 비치를 신청한 장본인으로서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그 감상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왕이면, 읽어보니 재미있다거나 좋았다거나 감동을 받았으니 다른 이들도 읽어보라고 권하는 글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치부한다. 그래놓고 다른 이들에게 읽어보라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옮긴이가 느낀 낯섦과 설렘 중 나는 ‘낯섦’만 느꼈을 뿐이다. 지루한 낯섦.
물론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며 옮긴이처럼 ‘낯섦과 설렘’ 그 두 가지를 다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 더해 재미와 감동까지도. 그렇다면, 그건 분명 그 사람 몫의 행운이다. 반대로 이 글로 인해 내가 누군가의 실망을 사전에 예방하고 그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일조했다면 그 또한 그 사람에게 있어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제까지 나는 '<개와 함께한 하루>와 함께한 일주일'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아직 그후, 또 다시 더해진 '이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 번 더 읽은 이틀에 대해서! 그 이틀이 궁금하신 분은, 다음 주를 기다려 주시라.

박청환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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