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열린글밭 칼럼 김미희 에세이
아련한 행복
  • 안산신문
  • 승인 2022.03.31 09:58
  • 댓글 0
김미희<소설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중에서

 지금도 낯선 도시를 여행하면 엽서나 편지를 쓰고 싶다. 이제는 편지를 받을 대상이 너무 좁다. 손 편지를 안 쓴 지 오래기도 하지만 보내고 싶은 아련한 대상도 없다. 이상은 사라지고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오래 살았다.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하다. 시인을 흉내 내며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 쓰기는 못 할망정 그의 사랑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오롯이 혼자서 3박 4일을 보냈다. 약간의 외로움은 있을지언정 혼자 여행은 장점이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다. 식사, 숙소, 여행지 등 누군가와 맞춰야 하고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에 부담이나 어려움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면 되었다. 휴식을 취하고 산책하고 보낸 시간이 살아갈 자양분이 되고 글감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혼자 여행은 왠지 모르게 슬프고 아련하다.
  유치환의 시 「행복」은 사랑의 서사가 만들어낸 감정이 행복으로 휘어진 것이 아니라 슬프게 느껴진다. 플라토닉 러브가 지닌 한계 때문인가? 청마 유치환의 비극적 죽음 때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사랑 그 자체의 숙명성 때문인가?
 나도 경남 통영의 어디쯤을 걷다가 시를 쓰거나 편지를 쓰면서 유치환 시인이 사랑의 담론을 행복으로 치환시킨 영혼의 지대를 탐험해보았다. 나는 혼자라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운 감정. 그러나 청마 유치환은 “애틋한 연분”이 가닿을 수 없는 사랑인데도 슬프기보다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은 완성될 수 없이 끝난 사랑이어서 더욱 아련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1947년에 시작해 1967년 교통사고로 완료한 사랑의 진실은 결국 미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체국 앞길을 걸어서 바닷가 옛친구의 집을 찾아 걸었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나 변한 통영의 모습에 친구가 살았던 집 앞을 여러 번 오갔다. 친구네는 바닷가 앞에 식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면 바로 찾을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둘도 없이 친한 사이여서 대구에서 통영까지 자주 친구 집을 방문했다. 지금은 소식이 끊긴 친구와 그의 집도 찾을 수 없었다.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봐 그 앞을 3일 동안 서성였다. 유치환 시인은 사랑에는 닿을 수 없지만, 친구를 생각하면 여전히 슬프고 아련하다. 아마 이번 생에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봄, 아련한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