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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 날
  • 안산신문
  • 승인 2022.04.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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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 구경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보도했다. 안산은 전국에서 벚꽃이 많은 곳에 속한다. 멀리 고생해서 꽃구경하러 나서지 말고 가까운 화정천이나 호수공원을 산책하면 정말 아름다운 벚꽃을 볼 수 있다. 우리 아파트 안에도 30년 넘은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날도 안산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출근하면서 라디오에서 속보를 들었다. 사무실에는 먼저 도착한 동료가 컴퓨터 화면에 세월호를 띄워 놓았다. 우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컴퓨터 속보만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안심하며 간단한 헤프닝으로 끝난 줄 믿었다.
 전 국민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만든 그 날. 그날의 공기와 느낌 그 하루 동안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라디오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고 속보와 구조되기를 기원하는 내용과 희망에 관련된 음악만 방송했다. 날마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았으며 진도 앞 바다의 조류상황과 바람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세월호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고 느꼈는데 세월호 관련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볼 수 없던 내용에 대해서도 볼 수 있고 진실에 대해서 선명하게 다룬 영화라 생각이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에 절망했다.
 사고가 나고 열흘 뒤에 시부모님의 팔순 잔치였는데,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세월호에 수많은 아들이 갇혀 있는데 우리가 흥청거리면 잔치할 수 없다시며 간단하게 가족 식사만 하고 말았다. 대학생이던 아이들도 모두 자원봉사에 참여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진도에 사는 문인과도 교류하게 되었고 진도에 위로차 방문하기도 했다.
 &#8203;내 가족은 아니었지만, 안산에 살았기에 일상에서 주검과도 만났다. 당시 선부동에 살았던 나는 주변에 있는 병원에서 출근길에서 장례차를 만났다. 영구차 앞에 적힌 몇 반 누구라는 이름을 일기에 쓰고 그 아이를 세월호 추모관에 가서 찾아보며 기도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여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잊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안산에 살고 화정천을 산책하고 단원고 앞을 지나다녔다.
 세월이 이렇게 지나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 아이들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몇 년 전 어떤 모임에서 세월호 유가족 대표를 만났다. 너무나 평범한 아이 엄마였다. 우리보다 조금 더 자각한 엄마일 뿐. 그래서 아이를 기억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앞장서는 그분들에게 미안했다. 투명하게 원인을 당연히 알고 싶은데 제대로 사실에 관해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스스로 진실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또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고 기억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은커녕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내가 아닐까 반성한다.
 그때, 우리는 모두 어른답게 기본을 지키며 바르게 살겠다고 맹세했다. 정부나 정책에 기대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바꿔 내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망각을 잘하는 동물이다. 8주기를 맞는 지금, 사회나 사람이나 별로 바뀐 것이 없다. 여전히 안전사고나 대형산불이 일어나고 그것에 대처하는 우리는 미숙하고 나의 일이 아니면 미온적이다.
 그날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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