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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Q
  • 안산신문
  • 승인 2022.04.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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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란 장편소설

요즘 미니멀라이프를 동경하며 정리전문가들의 유튜브 채널을 전전하는 중이다. 최근에 본 어떤 영상에서 정리전문가가 말하길, 정리의 꽃은 ‘잘 버리기’란다. 아무거나 막 버리라는 게 아니라 잘 가려서 버리라는 조언인데, 물건을 가려볼 것도 없이 버리기 자체를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우리 아버지처럼. 뭐든지 다 쓸데가 있고 중요한 거라면서 절대로 못 버리는 분이다. 나는 대체 왜 그렇게 고물을 이고지고 사는 거냐며 짜증을 냈는데, 그때 어머니가 그러셨다. “마음 둘 데가 없어서 물건에 두고 살아서 그런다.” 
  그랬던 아버지는 최근에 우리집 옆 빈터에 돌미나리를 키우고 들판에서 냉이며 쑥을 캐고 다니시면서 조금 달라지셨다. 내가 스리슬쩍 오래된 잡동사니를 내다버려도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흙에서 나고 자라고 죽었다가 다시 나는 것들에 마음을 두셔서 그런가. 아침저녁으로 빈터를 들여다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고민만 할뿐 가늠은 되지 않아,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책에서 힌트를 얻기로 한다. 
  박영란 작가의 소설 [게스트하우스Q]에는 재건축을 기다리는 공터에 씨를 뿌리고 해바라기를 가꾸는 할머니 우경씨가 등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정성이는 우경씨의 손녀다. 언젠가 공터에서 뭘 보냐는 정성이의 질문에 우경 씨는 세상 이치를 본다고 했다. ‘나고 죽는 이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면서도 사람은 제각각 하루를 살아낸다. 누군가는 정성스럽게, 누군가는 죽지 못해 억지로, 누군가는 끝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감당하면서. 그러다가 이 고달픈 생에 원망이나 울화조차도 사라지고 담담하게 관조하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공사가 시작되어 해바라기들이 모두 갈아엎어진 뒤에, 우경 씨가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며 중얼거렸던 것처럼. “그만하면 되었어.” 
  정성이의 아버지는 크게 장사를 하다가 실패했다. 이 단 한 번의 실패는 정성이 가족 3대를 완전히 부셔버렸다. 아버지는 죽었고 아버지의 부채로 인해 할머니는 농장을 빼앗기고 농장의 모든 짐도 다 버려야 했다. 엄마는 큰 딸의 오피스텔에 얹혀살게 되었으며 큰 딸은 더 이상 대학에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작은 딸인 정성이는 할머니와 함께 고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내려가 지내게 되었다. 좁은 오피스텔에서 궁핍한 살림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 가족의 의리라 여겼던 정성이는 고모의 게스트하우스에 마음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비밀투성이인 기라 고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Q는 너무 흥미롭고 따듯하며 매력적인 곳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연이은 가족의 파산에 큰 상처를 받았던 정성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기라 고모와 할머니,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마음을 나눠 받고 게스트하우스의 가족으로 안착한다. 
  [게스트하우스Q]에서 작가는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재기가 불가능해져버린 사회 속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위험에 내몰린 인간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노릇을 못 하게 되어 버린 거야. 모두가 아이처럼 살도록 되어 버린 거지. 용돈 정도의 임금에 만족하고 어떻게든 작은 기쁨을 찾아 소비하며 살다가, 늙으면 용돈보다 못한 푼돈에 의지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뀐 거야.(책 168쪽)” 치명적인 실패와 함께 나락에 떨어져 버린 인물들의 입을 빌려 작가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일깨운다. 그와 동시에 나직하게 어깨를 두드려 준다. 당신이 설령 아주 기구하게 실패했어도, 쏟아 부은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생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도 ‘그만하면 되었다.’고. 해바라기가 갈아엎어진 공터 앞의 할머니처럼, 모든 슬픔이 지나간 후에 담담히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게 된 정성이처럼, 이 이야기와 만난 독자들 역시 ‘그만하면 된 거지.’라고 스스로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무척 깊고 따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할머니가 이야기한 ‘나고 죽는 이치’를 떠올린다. 나고 죽고 다시 나는 이치. 허망하게 져버린 꽃잎이 내년 4월에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하는 이치다. 설령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해도, 이미 자신의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떠났음을 알리는 이치이기도 하다. 아버지께, 빈터에 언제 공사를 시작할지 모르니 텃밭을 마련해보자고 이야기해야겠다. 어쩌면 아버지는 텃밭까지는 필요 없다고, 돌미나리 몇 뿌리 심어본 것으로 족하다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

정상미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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