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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깃든 사연
  • 안산신문
  • 승인 2022.05.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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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몇 년 전 미국에서 한 달을 지냈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도서관을 방문하고 서점을 간 경험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한 번은 애팔래치아산맥을 따라 캐나다를 가게 되었다. 3,500km에 달하는 긴 여정 곳곳에 인디언 부족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하고 정착이 완료되자 원래 살고 있던 인디언들은 자기가 살던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 살던 인디언 부족은 약 5개 부족으로 그중에 체로키 부족이 애국가로 부르던 ‘어&#8203;메이징 그레이스’는 우리가 찬송가로 알고 자주 불렀던 노래이다.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주 일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 '미합중국'의 강제 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 리(2,000km) 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미국사는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라고 한다.
  화가 로버트 린드노(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이라는 그림에는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들은 살던 곳의 모든 것을 두고 맨몸으로 쫓겨났다. 살던 터전, 집과 가구, 가축을 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체로키 인디언은 고향에서 5천 리 너머로 거의 걸어서 가면서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만6천 명이 넘는 인디언이 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대략 4,000명이 도중에 숨졌다고 한다.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 이주에서 이들이 부른 노래가 Amazing Grace였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
 뉴질랜드 여행에서는 원주민 마오리족들이 민속공연 끝에 ‘연가’를 불렀다. 우리가 학창 시절 MT에서나 응원가로 많이 불렀던 노래가 ‘연가’였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
 이 연가의 고향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이라는 것이었다. 옛날에 원수 집안의 두 마오리족은 서로 치고받고 힘겨루기만 하는 부족이었다. 두 집안의 처녀, 총각이 눈이 맞고 말았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밤새 카누를 저어 오가며 사랑을 나눴다. 둘은 몰래 밤바다를 오가다가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사연을 들은 두 집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에 빠진 그들을 인정하고 화해했다는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위한 노래가 연가다. 밤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센 풍랑이 밀려와도 카누에 몸을 싣고 성난 파도를 밀어내고 그리움을 달랜 애틋한 사랑 노래다. 우리나라의 노래인 줄 만 알고 듣고 불렀던 연가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였다.
  노래에는 많은 사연이 들어있다. 우리가 찬송가로 알고 불렀던 Amazing Grace가 인디언의 슬픈 애국가였고 경쾌한 사랑 노래가 마오리족의 연가였다니.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고조선의 언어였다고 하는 말이 많다. 많은 이들이 영어 발음을 한국어와 한문으로 표기해 인터넷에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또한 우리의 말로 해석하니 사연이 참으로 깊고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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