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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고]반쪽의 좋은 집 
  • 안산신문
  • 승인 2022.05.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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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2003년 칠레 이키케 도시 중심부, 빈민 100가구가 5천㎡ 땅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칠레 정부는 한 건축가에게 이곳에 이들이 살 공공 주택 건축을 의뢰하였다. 가구당 만 달러의 보조금을 주면서 이 돈으로 토지를 수용하고 기반 시설을 조성하고 100 가구에게 최대한 40㎡ (약 11평)의 집을 지어주는 것이 조건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불법 점유한 곳이 도시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토지 가격이 보통 공공 주택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3배나 비싸다는 것이었다.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집을 짓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건축가는 주민들을 불러 모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수직으로 100가구를 짓는 방식에 한사코 반대하였다. 집을 넓힐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건축가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였고 마침내 한 가지 훌륭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던 방식이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반쪽의 좋은 집( Half of a good house)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는 이 반쪽의 좋은 집( Half of a good house) 프로젝트로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80㎡의 집을 각 가구에게 제공하면서 40㎡의 공간만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 공간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최소한의 기둥만 있었고 벽도 씽크대도 없었다. 나머지 40㎡의 공간은 계단으로 올라간 곳에 바닥만 있고 사방이 훵하니 뚫려있었다. 누가 봐도 앞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으로 보였다. 비어 있는 곳을 완성하는 것은 모두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의 몫이었다. 모두 몇 주 만에 각자의 집에 벽을 세웠다. 방을 만들고 씽크대를 꾸몄다. 칠레에서는 오늘까지도 이런 반쪽짜리 집을 계속 짓고 있다.
건축가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40㎡ 규모로 새집을 제공했을 경우 그곳은 또 슬럼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슬럼가로 변하면 개발에 밀려 다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한국에서 그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의 어느 한 지역이 재개발되면 그곳 원주민의 정착률은 10%가 채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칠레에서 빈민이 중산층으로 발돋음할 최소한의 집의 규모를 80㎡로 예상했고 이것을 주민들에게 주고 싶었다. 일자리가 풍부한 대도시의 중심부에서 말이다.
“40㎡의 작은 집 대신 80㎡의 절반에 해당하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가 한 말이다. 세상은 그의 놀라운 아이디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하고 집을 지은 건축가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쪽의 좋은 집에 살 사람들이 이루어갈 가능성에 눈을 두었고 그것이 실현될 거라고 믿었다. 
“설계하는데 어떤 힘이 있다면 그것은 통합의 힘입니다” 그는 도시 빈민을 도시 주변부로 내모는 방식에서 벗어나 품에 끌어안으려고 했다. 이 대담한 도전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이 누추한 곳을 향한 사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돈과 권력과는 거리가 먼 곳을 바라보더라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귀한 사례다. 
우리 주변에서도 반쪽의 좋은 집처럼 낮은 곳을 향한 도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었던 건축가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한 칠레 정부처럼, 우리도 이런 대담한 도전을 귀히 여기고 응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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