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나는 작년에 죽음과 관련된 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요즘은 성(性)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주제로 하여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성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보는 중이다. 얼마 전 나는 은하선 작가의 <이기적 섹스>를 찾고 있었다. 책은 청구 번호에 기재된 자리에 없었다. 직원은 청구 번호를 확인하더니 ‘성인’  서가로 가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청구 번호에도 ‘성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 서가는 출입구 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의자가 쌓여 있고 서가가 놓인 방향도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머물지 않을 위치였다. 나는 직원에게 왜 책이 그곳에 꽂혀 있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어린 학생들이 볼 수 있어서 그런 책은 따로 비치한다고 답했다. 천천히 그곳에 있는 책을 살펴보았다. 모두 제목에 “섹스‘가 들어가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2020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여성가족부와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이 전 세계 어린이책 가운데 선정한 ”나다움 어린이책’과 관련해서 큰 논란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성교육 교재로 쓰였던 책과 관련해서는 남녀가 성관계를 하면서 ‘신나고 멋진 일’이라거나 ‘재미있다’라고 표현된 것이 문제였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쪽에서는 그런 표현이 어린아이들이 성에 일찍 눈뜨게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이 사업을 철회하였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섹스를 ‘위험한 일’이고 ‘먼 훗날에나 시도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쳐야 할까? 쉬쉬하고 숨겨야 하는 일일까? 그럼 왜 다른 나라에서는 ‘나다움’ 어린이책 같은 것을 펴내고 널리 읽히도록 하는 것일까? 조기 성애화를 조장한다는 그 책은 덴마크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 물건에 포함된 것이기도 했다.
성경험을 하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있다. 10대 청소년들 가운데도 당당하게 섹스를 나눌 권리를 주장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것은 ‘나다움’ 그림책이나 <이기적 섹스> 같은 책의 영향이 아니다.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그만큼 빨라진 탓이 제일 크다. 다음으로는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매체의 영향도 있다. 온갖 ‘음지’에는 섹스가 넘쳐난다. <이기적 섹스>를 쓴 은하선 작가만 하더라도 중학교 때부터 섹스를 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섹스에 대한 탐험에서 그녀만큼 앞서 나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 관념에 저항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 경험을 낱낱이 까발렸다. 그녀는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섹스하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방송에서 퇴출당하였다. 청소년의 성 권리와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놓고 ‘말’한 것이 죄였다.
구상 중인 내 소설에는 연인이나 부부가 섹스에 곤란을 겪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현실을 반영한다. 어릴 때부터 섹스를 비밀스러운 것으로 다루고 그것에 대한 ‘말’을 억압한 결과다. 우리는 섹스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그 ‘말하기’가 그림책에서부터 막히는 세상이다.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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