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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빗점(The Critical Point)
  • 안산신문
  • 승인 2022.06.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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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경영학박사>

   6월(June)은 젊은이의 계절이다. 5월(May)은 라틴어 Maiores(노인)에서, 6월은 Juniores(젊은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찍 꽃 피웠던 벚나무는 버찌열매로 가득하다. 녹색으로 우거진 숲은 싱그러운 젊음을 상징한다. 어릴 때 겪었던 6월은 마냥 낭만적인 계절은 아니었다. 지난해 수확했던 곡식은 이미 바닥이 나고 가을에 씨뿌린 보리는 아직 수확이 어려운 춘궁기를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고빗점인 하지(夏至)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가 지나야 비로소 첫 수확으로 감자를 캐고 보리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잊혀진 낱말이 되었지만 보릿고개는 아마도 우리 조상들이 매년 넘어야 했던 배고픔과 기다림의 고비 곧 임계점이었다. IBM에 연구원이었던 도허티(Walter J. Doherty)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스템의 반응속도가  0.4초 이내가 되어야 집중력과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도허티 임계의 법칙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기다리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기다리는데 한계를 느끼는 시간은 0.4초에 불과하다. 그러니 배고픔을 참고 기다리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우리 말로 고빗점인 임계점이란 어떠한 물리적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의 지점을 의미한다. 한편 통계적 가설 검정에서 귀무가설의 기각이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판정 기준이 되는 값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물은 100도에 끓고 0도에 얼게 된다. 99도에는 물이 절대로 끓지 않으며, 1도에도 얼지 않는다. 물이 끓는 온도 혹은 얼게 되는 온도를 임계치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야기 할 때 해산의 고통을 비유로 든 예가 많다. 우리는 어떤 일을 위해 만들어 내는 수고를 산고(産苦)라고 말한다. 창조적인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인간은 달리는 선수와 같이 목표를 위해 달음박질하고 있다. 인내의 한계를 극복해야 성취가 가능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적합한 수능 임계점수를 받아야 한다. 돌싱포맨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방송이 있었다. 언제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이상민은 가격을 계산하지 않고 마음대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때라고 했다. 자유로움의 가치다. 돈을 버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다섯 개의 외국어를 한다면 적어도 인류의 80%와 소통이 자유롭다.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견디기 힘든 노력과 고통 곧 고빗점을 넘어야 한다.

  사람마다 능력, 의지와 열정, 경험이 다르기에 임계점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반드시 견디어 낼 수 있다. 임계점은 결정적인 값이다. 이 값을 치루어야 변곡점을 지난다. 쉬울 리가 없다. 고통의 임계점은 참고 기다림의 정점이다. 이 점을 넘으면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쉽사리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임계점의 턱에서 무너지면 절망하게 된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다. 커톨릭의 신부이며 과학자인 샤르뎅은 물질도, 정신도 진화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다윈의 유물론적 진화론에 반대했다. 그는 인간현상을 통해 과학적인 사실을 토대로 우주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는 “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다”라고 했다. 인간이 영적 존재로서 갖는 속성은 소명(calling)과 정체성이다. 여인이 해산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힘은 엄마라는 정체성과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소명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하게 한다. 아이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이 가능하다. 소명의식과 정체성이 분명하면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이룰 수 있다는 일관된 신념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분명한 꿈이 있고 소명감이 있다. 위기를 당연하게 넘어야 할 경험으로 여긴다. 인생 곡선은 변화무쌍하다.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한다.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대학교의 버버라 프레드 릭슨 교수는 “부정은 우리에게 고함을 치지만 긍정은 오로지 속삭일뿐이다” 라고 했다. 부정적인 사고는 절망과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긍정적인 사고는 도전과 변화를 이루어 내고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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