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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아래에서
  • 안산신문
  • 승인 2022.07.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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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동화작가>

여름을 대표하는 꽃나무 중 자귀나무, 무궁화, 배롱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벌써 자귀나무의 꽃은 지고, 열매를 조랑조랑 달기 시작했다. 무궁화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나라꽃의 이름값을 하고 있다. 배롱나무도 이에 지지 않는다. 가까이보다는 멀리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꽃이 배롱나무이다. 타버릴 듯한 붉은 빛 꽃숭어리들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배롱나무는 이름도 많다. 부처꽃과의 나무여서 불가에서는 부처꽃이라고 까지 불리며 대접을 받고 있다. 또 백일홍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배롱나무의 개화 기간은 무려 석 달 반 이상이다. 수많은 꽃숭어리들이 마치 릴레이하듯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일년초 백일홍과 혼동의 여지가 있어 나무 목(木)을 앞에 넣어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배롱나무의 배롱이 백일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백일홍이 ‘배길홍’으로 바뀌고, 다시 ‘배기롱’을 거쳐 ‘배롱’으로 변해 배롱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수긍이 가기도 한다. 또한,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린다. 실제 긁어보았지만, 잎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신경과 마음이 둔한 탓으로 돌린다. 선조들은 아름다운 꽃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비유하며 안타까워했다. 꽃은 10일 이상 피지 않는다. 왜 목백일홍이라고 불렸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은 배롱나무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서원이나 오래된 산사, 고택, 정자 등에서나 볼 수 있었다.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산사는 경남 밀양 표충사를 들 수 있다. 고창 선운사, 전남 강진의 백련사 등에서도 고목의 배롱나무를 볼 수 있다. 출가한 수행자들이 해마다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벗어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심었을 것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들도 여름이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무더위로 나태해지기 쉬운 여름철, 쉬지 않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에서 심었을 것이다. 선조들의 배롱나무 심은 의미를 생각하면 빙긋 미소가 새어 나온다.
부끄러운 경술국치일이 다가오면 절명시(絶命詩) 네 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한 매천 황현이 떠오른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천 번을 보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라며 배롱나무꽃을 칭송한 시가 있다. 사육신 성삼문이 남긴 한시도 있다. ‘엊저녁 꽃 하나가 지더니/ 오늘 아침 꽃 하나가 또 피었네/ 서로 백 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 너를 상대로 술 마시기 좋아라’라는 내용이다. 사육신의 기개 외에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시이기도 하다.
안산에도 배롱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그중 화랑유원지의 단원각 앞 배롱나무가 일품이다. 휴일이 되면 무더위 속에서도 사진 찍는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노적봉 폭포 둘레길에도 배롱나무가 만개하고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 붙들어놓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안산 시민의 마음을 제일 많이 붙잡는 배롱나무가 있다. 상록구 일동에 위치한 성호 이익의 사당으로 가는 길의 배롱나무이다. 실학의 대종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호 이익은 안산이 낳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다. 성호의 학문과 사상은 후대 정약용 등을 비롯한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와 함께 안산의 자랑이다. 안산시는 지난 5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제25회 성호문화제를 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행사를 했던 아픔도 있었지만, 이번엔 대면으로 이루어져 뜻깊은 행사였다.
이익 사당의 배롱나무 아래에 서면 많은 상념이 교차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배롱나무 꽃숭어리들이 흔들리면,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미래를 여는 이익 선생의 가르침과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썩은 냄새 진동하는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배롱나무꽃이 더한층 새롭게 보인다. 배롱나무는 매끈하고 껍질을 다 벗어 솔직 투명하여 숨김이 없다. 곧은 성품을 나타내는 선비의 기상 같아 선비들이 가장 좋아한 나무이다. 우리 정치판에 배롱나무를 닮은 정치인들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여름 우뚝 서 있는 배롱나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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