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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신문
  • 승인 2022.08.1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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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에질 비젠은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안내 멘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안전벨트를 확인하고 두리번거리며 창밖을 내다봤다. 창밖은 비가 내리는지 잿빛 수의 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한순간 비행기는 비행장 활주로 위에 앉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생각에 빠져 들었다.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하는데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질 비젠은 8월 4일 오전에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하여 암스테르담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우주선 탑승객처럼 한국 도착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비젠은 한국에 다 와 가는 시점에서 깜빡 잠이 든 것이 몹시 아까웠다. 상공에서 자신의 모국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싶었다. 그러면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승무원에게 말을 걸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은 서울이 아닙니까?”
 “한국에는 처음 오시나 봅니다. 이곳은 영종도라는 섬입니다. 서울로 가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울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비젠이 영어로 물어서인지 한국인 승무원도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다. 노르웨이는 노르웨이어와 영어를 공용한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웨이어와 영어를 습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그가 말 못하는 벙어리인 줄 알았다.
  비젠은 두 가지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 그는 일곱 살에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을 갔다. 그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아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곱 살 이전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기억상실에 걸린 것을 알지 못했다. 양부모는 비젠이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양부모와 피부가 다른 한국인이었고, 입양 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사회부적응증을 겪어야 했다. 양부모는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 치료했다. 병원에서 그의 기억상실증도 발견되었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충격이 기억상실의 원인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양부모는 그의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주선했다. 노르웨이 정부도 그가 정신적인 병을 앓지 않고 노르웨이에 적응하도록 신경을 썼다. 여러 가지 악기와 운동을 배웠다. 덕분에 그는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차츰 다른 노르웨이 아동과 같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메사 호숫가의 릴리하마에 살았다. 비젠의 양부모는 한인 입양아 모임에 그를 보냈다.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그 모임에는 비젠과 같은 고등학생 입양아들이 수십 명 모였다. 그와 피부색이 같은 아이들. 그들과 사귀다 보면 그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배려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한국어를 알지 못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모두들 친부모의 나라, 친부모에 대해 몰랐다. 또래의 입양아들은 대부분 3세 이전에 입양되어서 조국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일곱 살에 입양된 그도 아는 것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임에 두 번 다시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 입양아들이 연락을 해 와도 만나지 않았다. 비젠과 같은 처지의 한국인 입양아가 수 천 명이나 노르웨이에 살고 있었다.
 서른살이 된 비젠은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 그의 고국에 부모를 만나러 왔다. 비젠의 한국여행에 기억을 찾고 행복한 일정이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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