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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와 가뭄
  • 안산신문
  • 승인 2022.08.2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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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용치봉 중턱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에는 양쪽에 저수지를 두 개나 끼고 있었다. 왼편 서당 골 저수지는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고, 오른쪽 용 골 저수지는 내가 어릴 때 조성되었다. 1960년대 후반, 저수지 공사에 일하러 온 인부들은 우리 동네에서 몇 달간 숙식하면서 용 골로 몰려가 일을 했다.
 용치봉에 올라서면 두 저수지가 보이고 그 아래 두 개의 물길을 따라 층층의 다랑논에 이어 작은 평야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용치봉에 올라 놀이를 하다가 더우면 용 골 저수지에 가서 멱을 감았다. 오른쪽 서당 골 저수지는 물이 차고 색깔도 비정상적으로 푸르렀다. 깊이가 엄청나고, 저수지 만들 때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나온다는 소문에 아이들은 낚시나 수영을 금기시했다.
 가뭄이 오고 논밭이 갈라질 때면 두 개의 저수지에서 물을 빼는데 역시나 용 골 저수지만 고기가 많이 잡히고 서당 골 저수지에는 고기 한 마리 없었다. 신기한 것은 서당 골 저수지는 바닥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가뭄이 와도 바닥에서 샘이 솟아서 물이 조금이라도 차 있었다. 용 골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면 아이들은 저수지 바닥에서 물고기, 민물새우, 고둥 등을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 가뭄에 어른들은 애가 타고 속이 타도 아이들은 몇 년에 한 번 생기는 저수지 바닥을 보고 신이 났었다.
 그러다 장마가 지고 수위가 넘실대면 어른들은 빗속에서 둑을 메우느라 한밤중에도 불을 켜고 용 골 저수지로 몰려갔다. 아랫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저수지가 범람할까 봐 밤새 노심초사했다. 걱정하는 어른들 틈에서 우리도 밤새 숨을 죽였다. 서당 골 저수지는 범람의 위기를 겪은 적은 없었다. 어른들은 서당 골 저수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엄청 튼튼하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수탈의 목적으로 우리 자본으로 우리 조상의 인력을 써서 만들었을진대, 그것이 두고두고 칭찬받을 일이라니.
 그곳을 떠난 지 30년이 더 지났는데도 지금도 용 골 저수지는 범람의 위기와 바닥 보이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 사이 보수공사를 여러 번 했겠지만, 여름마다 가슴을 졸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올여름 폭우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도 엄청난 피해를 줬다. 한강의 수위는 홍수 때마다 톱뉴스를 차지한다. 이번 장마와 홍수에 한강 상류의 소양강, 팔당댐에서 물을 방류하자 한강 아래 지역은 물바다를 면치 못했다. 집중호우가 내리자 하수처리가 부실하여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어떤 맨홀은 쓰레기가 가득 차서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의인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맨홀을 들어서 쓰레기를 치우자 물난리를 멈출 수 있었다.
 홍수나 가뭄뿐만 아니라 이상기온으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지구온난화로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올여름 쏟아부은 기록적인 폭우는 올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예상할 수 없는 폭우와 가뭄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바닥을 드러낸 강바닥에서 600년 된 불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는 중요한 방법은 숲을 가꾸는 것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많은 빗물을 저장한다.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많은 비에도 홍수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경북 봉화에서 숲을 가꾸며 수목원을 하는 지인은 이번 홍수와 가뭄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숲이 가득한 도시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 홍수와 가뭄에도 끄떡없는 세상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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