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창문이 몇 번 덜컹거리다 이내 유리창이 깨져버렸다. 창밖 느티나무의 우듬지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나갔다. 운동장의 나무도 도미노 현상처럼 힘없이 부러지며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정전 속에 무서움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이 교실에 흘러넘쳤다. 아직도 그날의 참상을 잊지 못한다. 2003년 9월 초순 들이닥친 태풍 매미였다. 그때도 올처럼 추석 무렵이었다. 재산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명피해가 무려 130명이나 되었다.
태풍 힌남노의 무서운 혓바닥이 전국을 무서움에 몰아놓고 있다.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계속되는 속보와 안전 안내문자에 가슴이 졸아붙는다. 하지만 어쩌랴 인간들이 자초한 일, 피해가 최소한이길 바랄 뿐이다.
G20 환경.기후장관 회의가 지난달 31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다. ‘함께하는 회복, 더 나은 회복’이 회의 주제였다. 세계 곳곳에서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화재, 홍수, 폭염 등 극단적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는 가운데 열린 회의라 기대가 컸다. 그러나 회의는 공동 합의문도 작성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탓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상기후는 갈수록 그 피해와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히말라야산맥과 알프스산맥의 설선 한계선이 해마다 내려오고 있다. 안데스산맥도 마찬가지이다. 산봉우리에서부터 녹아 흘러내린 빙하 담수가 곳곳에 큰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다. 그린란드 정상에서는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대륙빙하가 광범위하게 녹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열대성 폭풍인 태풍과 허리케인은 지난해 97차례나 발생, 매년 87개를 웃돌던 수치를 깨버렸다. 대홍수와 대가뭄 그리고 폭염과 혹한 등 극단적 기상이 지구를 옥죄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의 재난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석 달 동안 이어진 폭우로 정부는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전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사망자 수는 무려 1100명대에 이른다.
지난해 8월 러시아에서는 어마어마한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서울 면적의 141배나 달하는 영구 동토층이 녹고 말았다. 매머드 유해 발굴로 생계를 잇는다는 보도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중국의 장강은 가뭄으로 1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위를 기록했다. 강바닥에서 600년 전 명·청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나타났다. 유럽의 체코에선 엘베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배고픔의 돌이라 불리는 ‘헝거 스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헝거 스톤은 15세기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판 스톤헨지가 말라붙은 저수지에서 나타났다.
이탈리아 북부 포강에서는 묻혀 있던 고대 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 로마를 흐르는 티베르강에서는 고대 로마 정착촌, 네로 황제 시대 만들어진 다리 유적이 나왔다. 세르비아의 다뉴브강에서는 폭발물과 탄약으로 가득 찬 나치 독일 군함 20척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온난화의 부메랑이 지구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지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태풍의 무서움 속에서도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설날과 더불어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북상 중인 태풍 속보에 조바심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하던 친척 간의 상봉이 이번엔 기대되었는데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본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가 여간 무서운 게 아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추석 전후에도 무서운 태풍이 오는 시기이다. 장마 이후 여름에 자리 잡은 북태평양 기단이 태풍을 밀어내는 일종의 보호막이 되는데, 이 보호막의 힘이 갈수록 약해져 더이상 태풍을 밀어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추석 태풍으로는 1959년의 사라, 2003년의 매미가 있다. 그래서 태풍이 북상한 추석을 ‘공포의 추석’이라고 불린다. 추석 기간의 태풍은 ‘추석 칼춤’이라고도 불린다.
어려울수록 소중한 추석이 되어야 한다. 태풍 피해자인 이웃과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힘든 이웃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추석이 되어야 한다. 송편도 나누어 먹고 피해 복구에도 함께 땀을 흘려야 한다.
태풍 힌남노의 북상 소식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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