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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우산
  • 안산신문
  • 승인 2022.09.21 09:45
  • 댓글 1
류근원<동화작가>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푸르러지고 있다. 벼 이삭이 패고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햇살이 마냥 필요한 계절, 또다시 태풍 난마돌이 제주와 경남지방을 할퀴고 지나갔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름 내내 비를 가려 주던 우산을 정리하며 고맙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여름, 우산이 만든 따뜻한 동영상이 자꾸 떠오른다.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한 여학생이 비를 맞으며 인도를 걷고 있었다. 차량은 연이어 지나가고 그중 한 승용차에서 우산 하나가 여학생에게 던져졌다. 여학생은 우산을 주워들고 운전자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승용차가 지나는 도로는 인도 쪽이 아닌 2개 차선이나 떨어진 차도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승용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고 동영상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4분여짜리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아름다운 메아리 울림을 선물하는 메시지였다.
누굴까, 우산을 던져준 사람은?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딸 가진 아빠가 타고 있지 않았을까, 딸 가진 엄마도 좋고, 아니면 젊은 사람도 좋고 누구면 어떨까?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우산이 있어도 쉽게 내주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문득 《키다리 아저씨》 소설이 떠오른다. 미국의 여류 작가 웹스터가 지은 소설이다.
‘고아원에 사는 주디는 어느 날 평의원의 후원을 받게 된다. 대학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써 보내야 하는 이상한 조건, 주디는 얼핏 본 후원자의 뒷모습만 기억하며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계속 편지를 보내며 저비스라는 멋진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런 어느 날, 키다리 아저씨가 병에 걸렸다는 편지를 받고, 주디는 꿈에도 그리워하던 키다리 아저씨를 찾아가게 된다. 주디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키다리 아저씨가 바로 저비스였을 줄이야.’
《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발표되어 백 년이 넘도록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명작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을 흔히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휩쓸고 간 지역마다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키다리 아저씨들이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산 속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아이들과 우산을 함께 쓴 부모는 온몸이 젖도록 아이들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다. 연인들은 자신의 어깨가 흠뻑 젖어도 상대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수채화가 어디 있을까?
비는 누구에게나 온다. 비를 맞는 사람과 비를 맞지 않는 사람.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는 비를 맞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자살 신고가 10만 건을 넘어섰다. 올해도 지난 7월까지 자살 신고가 6만 5000건에 달했다. 보육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하던 청년들이 생활고와 외로움 등으로 극단선택을 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죽이고, 생활고로 자살하는 부모들. 그리고 아무런 복지 혜택도 못 받고 유명을 달리한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우리 주위에 우산이 필요한 위기 이웃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아픔의 비를 사랑이라는 우산으로 가려 주어야 한다.
평생 약자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신 분, 김수환 추기경의 <우산>이란 시가 떠오른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다’로 시작되는 시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우산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오는 일부분이다. 삶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산을 어떻게 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장 아름다운 삶은 김수환 추기경의 우산처럼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아는 것이다. 어수선한 시국, 김수환 추기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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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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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경 2022-09-21 13:17:32

    많은 우산을 가지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나눠주는 사람이 행복한 성공이 되는군요~
    길 하나 건너서도 우산을 던져주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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