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환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지은이는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마음으로 돌보며 그 속에서 삶을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병동 의사다.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 직전에는 입원할 수 없다. 말기암 환자로 더는 항암치료조차 받기 힘든 환자로 정신이 있고, 임종을 편안하게 맞이할 준비를 원하는 곳이다. 투병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환자가 삶의 마지막 주치의를 찾아오는 곳이다. 환자와 가족이 치료가 아닌 통증 완화를 위해서 오는 곳이다.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통증이다. 아프면 누구나 우울해진다. 환자가 우울해하거나 불면증에 시달릴 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울증 치료가 아니라 통증 치료이다. 오해와 선입견으로 무의미한 통증을 겪는 환자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148쪽
  환자들은 통증과 싸움하고 있다. 그런데 보호자가 진통제는 중독이 된다고 환자보다 더 진통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단다. 통증을 견뎌야 병이 나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서라는데, 환자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통증에 온몸을 떨고 있다, 통증을 줄이고자 이곳에 왔는데 말이다.
  “나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당부하고 싶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모르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160쪽
  호스피스 병동은 삶과 죽음의 교과서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돈 때문에 싸우는 가족을 보며 의사는 제발 환자 앞에서는 싸우지 말라고 애원도 한다. 그리고 환자가 본인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의사가 조용히 가족 여행을 권한다. 마지막 가족 여행을 다녀온 환자들은 대부분 만족해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여행이었다고 가족들도 좋아한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과는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정서를 담고 있다. 잔잔한 정과 건강할 때 더 잘해주고 더 살펴주고 사랑해 주지 못한 것을 마지막 길에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환자를 보살핀다. 어떤 환자는 기적을 바라며 삶에 끈을 더 붙잡고 싶어서 호스피스 병동을 떠나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다가 더 악화하여 죽음을 앞당기기도 한다.
  금자 할머니는 스무 살 무렵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다섯 명의 시동생을 시집장가보내고, 자신이 낳은 6남매도 훌륭하게 키웠다. 시집살이가 매워도 “괜찮아요”를 입버릇처럼 했다. 그런 금자 할머니가 어느 날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말기란다. 간, 쓸개, 십이지장까지 전이된 상태란다. 자식들은 엄마에게 어떻게 알릴까를 고민하다 사실대로 말했다. 금자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그랬던 금자 할머니가 소리 지르고 칭얼대고 욕을 하고, 자식들은 변한 금자 할머니를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그런 할머니를 의사가 두 손 꼭 잡고 “그래요, 할머니. 힘드시죠?” 하니 눈물을 흘리신다. 그 매운 시집살이에 자식 농사 다 지어 놓고 이제 살만해지니 말기 암이다. 얼마나 힘드실까.
  죽음까지 다섯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부정, 두 번째는 ‘왜 하필 내가?’ 분노, 세 번째는 타협, 네 번째는 수용, 그리고 마지막 죽음이다. 우리네 여인들의 삶은 참고 견디는 생활이었다. 그 속에서 한국 사람한테만 있다는 화병이 있다. 화병은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표출을 해야 가슴속 시리고 아픈 상처들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는 떠난다. 태어남도 선택할 수 없듯이 죽음도 또한 선택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많은 생각을 한다. 의사는 말한다. 환자가 장기와 시신 기증을 유언으로 했다 해도, 환자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보호자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연명치료 거부나 장기기증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나 역시 생각해 봤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더 늦기 전에 의료보험 공단에 직접 가서 남편과 나란히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을 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식들에게 말했다. 연명치료 거부를 등록했다고. 아무 말이 없다.
 살아가면서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죽음을 가르치는 곳은 찾기 쉽지 않다. 이 책은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고 한다.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 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알려준다.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닌 또 다른 삶의 마무리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죽음을 잠시라도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정자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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