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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계절 
  • 안산신문
  • 승인 2022.10.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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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소설가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가을은 마무리의 계절이다. 곡식들도 익어서 거두어들이지만, 사람의 인생으로 치자면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친구들과 강화도 여행을 갔다가 오는 길에 이천에 들러 햅쌀을 샀다. 친구들과 4킬로짜리 여러 개를 샀다. 소포장으로 된 쌀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좋다. 외식비에 비하면 쌀값만큼 싼 것이 없다.

 결혼하면서부터 가을걷이가 끝나면 시골에서 쌀이 올라왔다. 40킬로 반 가마나 되는 쌀을 화물로 보내주셨다. 그 시절에는 택배가 없었다. 화물영업소에 가서 쌀을 찾아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쌀 반 가마를 택시에 싣는 일, 택시에 내려서 5층 계단을 오르는 일은 큰일이었다. 쌀자루를 1층에 두고 조금씩 퍼다 나르는 것을 본 경비 아저씨가 덥석 들어서 올려주기도 했다.
 동네 쌀집에서 한 말만 사도 집 앞으로 배달해 주는데, 그 많은 쌀을 갖다 두고 먹는 일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여겼다. 시골에 가면 꼭 쌀을 10킬로씩 작게 포장해서 나누어 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택배회사가 생겼다. 뭐라도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싶은 부모님은 참으로 반가운 시스템이었다. 우리 집에는 시골에서 보내온 각종 채소와 과일 반찬으로 택배 아저씨가 자주 들락거렸다. 물론 택배비는 착불이었다. 집에 사람이 없어 택배비를 내지 않으면 택배 아저씨는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도로 5층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용돈을 드리면서 착불의 불편함을 호소해도 아버님은 
 “내가 힘들게 농사지어서 보내주면 너희들은 택배비 정도는 내고 받아먹어야 하지 않냐?”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눈에 보이는 곳에 항상 현금 얼마를 두고 다녔다. 아이들이 택배비를 내거나 배달을 시켜 먹을 때도 돈통에서 돈을 꺼냈다. 그 돈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있는데, 항상 일정 금액 이상은 채워 놓고 내가 현금이 필요하면 가져다 쓰기도 한다. 처음에는 현금만 받아 갔는데, 나중에는 계좌이체로 보내달라고 통장번호를 휴대폰으로 찍어 주셨다. 나는 택배기사에게 커피값을 더 얹어서 보내곤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좋은 점은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 오래된 고층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길거리에서 복숭아 파는 차를 만났다. 친구는 “이쁘다, 맛있겠다.” 감탄하면서도 사지 않았다. 내가 두 상자를 사서 하나를 가져가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친구네의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를 하는데 한 달 동안 19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한다고 했다. 배달이나 택배는 모두 1층으로 내려와서 받아 가야 해서 하루에 한 번만 계단을 내려와 밖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한 번만 올라가기를 실천한다고 한다. 집에서 뭘 먹으면 음식물 쓰레기나, 분리수거도 하러 내려와야 해서 여름내 수박 한 통을 못 먹고 택배나 배달을 시키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 집도 이젠 시골에서 택배가 안 온다. 연로하신 아버님은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으시긴 하지만 보낼 엄두를 못 낸다.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고, 너무 많은 식재료가 와서 나누어 먹든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운 가을이다. 오늘은 흰 쌀밥을 지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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