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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시대
  • 안산신문
  • 승인 2022.11.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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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하늘은 검붉었다. 새벽 추위는 손끝을 아리게 했다. 시간이 흐르며 하늘이 밝아오자 인파는 더 밀려왔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라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새천년 새해 첫 일출을 보려고 동해 정동진을 향하는 길에는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새벽부터 정체현상이 일어났다. 일출 시각이 가까워져 오자 사람들은 차를 돌려 가까운 산이나 전망대로 향했다. 우리도 미술관 건물이 있는 산으로 갔다. 그곳의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2000년의 시작이라는 감동의 해돋이가 아니라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수 많은 인파가 바로 귀경길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새벽부터 강원도는 차가 엉키고 밀리어 온종일 병목현상을 일으켰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밥조차 편히 먹지 못했다. 같이 갔던 친구네 가족과는 일찌감치 헤어져 각자도생하자고 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이 많은 곳을 멀리하려고 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즐기려는 흥이 많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끼어야겠다는 관념이 강하다. 사실은 나도 끼고 싶지만,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기회가 되면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태원 핼러윈의 참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에 우리는 안전불감증에 대해 얼마나 많이 반성했는가? 안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어른의 미안함을 담아 우리가 먼저 반성하고 실천하자고 했다. 기본부터 충실하자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입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안산에 사는 많은 지인도 그랬다. 집 앞 화랑유원지에 분향소가 생기고 사라지는 8년 동안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한 번도 잊지 못했다. 8년여 만에 또 발생했다. 우리는 그동안 뭘 했나 생각하면 가슴을 치고 싶다.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자책감에 어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얼마 전 동생이 사고로 죽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막막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 한 사람부터 올바르게 살았는지의 반성과 원망, 무기력이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러면서 내 앞에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고 열심히 밥을 먹고 산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위정자는 단지 정치가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모두가 되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운 아침이다.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고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오늘의 일상기 속에 엄습하는

     비상한 시대의 징표를 주목해야 해요

     우리 일상과 인간 정신에

     허위와 분열과 부패를 씨 뿌리는

     숨은 실체를 직시하며 앞을 바라봐야 해요

 

      다시, 겨울이 와요

     나는 이 시대를 하루하루 떨림으로 살고 있어요

     일상기 속에 울리는 비상 경보음에 떨고 있어요

     먼 그대를 바라보며 겨울 사랑으로 떨고 있어요

 
     - 박노해 ‘나는 지금 떨고 있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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