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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기고]법위에 법으로 갈등 치유해야
  • 안산신문
  • 승인 2022.11.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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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석<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

토론과 합의와 양보라는 조화로운 정치는 실종되고 끝도 없는 무조건적 혐오와 적대의 시작점은 어디인지?
양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화해할 수 없는 지경은 루비콘강을 건너려는 것인지? 얄짤없는 타도와 부정의 끝은 함께 공멸하는 몰락의 길임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해야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더구나 아는 척 해바야 별볼일 없는 천박한 자본문명, 물질만능의 비루한 시대에 살고 있는게
우리의 자화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간다운 길을 벗어나 근세 이후에 이해타산과 이해관계로 얽힌 사막같은 삭막한 상황에 길들여져 모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비정한 세태를 증명하듯이 정치사회에 부정과 거짓이 횡행하고 있다.
시대전환을 위해 나아가기 보다는 시대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어 우려된다. 이념갈등에 이어 빈부갈등, 남여갈등, 세대갈등이 가지를 뻗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사회적 기원은 어디일까? 혹여 구시대의 잔재인 사라지는 진보와 퇴행화된 보수가 대립하는 양상이 새끼를 치는 걸까? 또 과학문명과 서구철학 사상의 이원론적 결정론 때문일까? 조선의 사색당파나 일재 잔재의 미청산 때문일까?
콕집어 어느 하나를 원인이라고 정할 수 없이 복잡하고 중층적으로 누적된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은 정치권의 대립은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결과물일 뿐이다. 
다툼은 갈등원인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원인들에 영향을 받고 사주받아 자행되는 피동적 상황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립은 시대전환과 나라발전에 하나도 기여할 수 없는 쓸모없는 소모전이 되어 버리고 만다. 타협이나 존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대립과 갈등은 분열과 전쟁을 바라는 집단을 약화시키는 실천이 전혀 아니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썩은 재료를 가지고 신선한 음식을 만들 수는 없듯이 구태의연하며 잘못된 관행의 되풀이일 뿐이다.
더우기 갈라진 한반도에서 남쪽마저 분열하는 상황은 기름을 지고 불로 들어가 공멸하는 핵심적 원인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쪽에서 더 큰 안목으로 적대적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역사의식이라곤 개나 줘버리라는 무뢰한 호전주의자들의 망동에 제동을 걸려면 평화 민주주의자들이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짜야 한다.
나 살고 너 죽자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희생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 통합을 도모해야 한다. 이것이 사즉생 생즉사이다.
나 살자고 상대를 계속 공격하면 똑같은 부류가 될뿐 아니라 그것 또한 정글의 법칙을 인정하는 꼴이다. 미국 행정학의 갈등관리 이론을 보더라도 대립해소의 제 1덕목은 상호 존중과 역지사지이다.
그리고 꾸준한 대화와 소통이다. 지금처럼 모든 제도와 생각들을 타협없이 아전인수로 해석한다면 분열현상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그러면 국가적 역량은 분산되고 사회적 비용은 하찮게 소모된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 선진복지국가는 물건너가고 양극화가 심화된 2~3류 국가로 곤두박질하게 된다.
몇몇 특권층은 상관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심각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질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더구나 위기를 조장하는 북한의 행태와 겹쳐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갈등 조장과 배타적 대립은 어마어마하게 국익을 해치는 해악이며 근본적인 병폐이다. 
모두가 평화로운 올바른 법치국가를 바란다면 법위에 법이 있음을 헤아릴 때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대동단결 할 수가 있다. 법위에 법은 상생과 조화로운 자연의 섭리이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미운 놈 떡하나 더 주는게 적대라는 고질병을 치유하는 첩경이다. 극한 분열로 치닫는 세태를 어이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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