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네사 우즈 저, 이민아 옮김, 디플롯

  편안함을 주는 연보라빛 표지에 그려진, 긴 팔로 서로를 껴안은 채 엎드려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위에 쓰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문장형 제목까지. 요즘 유행하는 인간관계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해였다. 오히려 이 책은 굉장히 전문적인 진화인류학 책이다. 하지만 ‘모든 인류를 위하여’라는 저자의 집필 의도대로 인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어, 누구나 읽어야 할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에 의하면 다윈이 만들지도 않은 적자생존(survival of fittest)이라는 개념은 그동안 많은 오해들을 불러일으켰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적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 하에 인간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여왔다. 경쟁중독사회라고 불리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만성화된 입시경쟁, 취업경쟁 속에서 매년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경쟁이 끝없이 지속되는 것은 유전자 차원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인류는 진화 과정 내내 최적자였던 것인가? 아니다. 신체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최적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가 끝까지 생존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책은 개와 보노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기가축화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인간 또한 공감능력과 친화력이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 강화되어 왔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인 친화력을 키움으로써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친화력에도 이면이 있다. 내집단에 대한 친화력은 외집단을 향한 혐오와 비인간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부모의 행동에 중대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옥시토신은 ‘포옹 호르몬’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나는 이를 ‘엄마 곰 호르몬’이라고 부르고 싶다.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를 분만할 때 흘러넘치기도 하지만 누군가 자기 아기를 위협한다고 느낄 때 분노를 솟구치게 만들기도 한다. (179쪽)
  이 책은 트럼프 정권 시기에 쓰였다. 트럼프는 “멕시코의 국경 장벽은 저 짐승들로부터 보호해줄 동물원 담장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들을 비인간화하면서 미국 국민들이 ‘엄마 곰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부추긴 것이다. 이후 이에 대항하는 좌파의 과격 시위가 있었고 좌우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렇게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반복적 폭력을 불러오는 것을 본 저자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 초고를 절반 이상 수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혐오와 폭력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사회학자 새뮤얼 올리너는 아내 펄과 함께 이 시기에 유대인을 구출한 사람 수백 명의 증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찾아낸 공통된 특징은 단 하나였다. 그들 모두가 전쟁 전에 유대인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동료와 친하게 지낸 경험이 있었다. (258쪽)
  결국 접촉했던 경험이 폭력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접촉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를 인류라고 보면 인종차별이, 우리를 생명이라고 보면 동물 학대가 사라질 수 있다. 보복성 비인간화가 아닌 보답성 인간화가 필요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종은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다. 이 책은 우리의 경쟁력은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에서 생겨났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김현숙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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