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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 안산신문
  • 승인 2022.11.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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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얇은 옷을 정리하고 겨울옷을 꺼냈다. 안 입는 옷과 책장의 책을 버리려고 보니 엄청났다. 5월에 이사하면서 옷과 쓸모없는 물건을 나누기도 하고 버렸다. 엄청나게 많이 버린 것 같았는데, 결국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도 가져왔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사이에 많이 사 모으기도 했다. 미니멀을 입으로 외치면서 실제론 물건의 홍수에 갇혀 산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쪽 나라의 임금 ‘숙’과 북쪽 나라의 임금 ‘홀’은 ‘혼돈’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가운데의 나라에서 만났다. 혼돈은 이 두 임금을 잘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혼돈에게는 그 구멍이 없다. 우리가 그 구멍을 뚫어주자”라고 의논했다. 숙과 홀은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었다. 칠 일째 혼돈은 죽었다. 원하지도 않은데 그냥 두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이다.
 이 말을 장자에서는 일착일규칠일이혼돈사(日鑿一竅七日而混沌死)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과잉 친절을 베풀고 결국에는 혼돈처럼 죽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대로 보기보다는 기대를 한다. 상대방이 나를 몰라 주고 기대를 채워주지 않으면 결국 관계를 망치고 만다.
 친구 세 명이 만났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 꼭 제일 가난한 친구가 먼저 낸다. 더치페이하거나 가끔 뒷짐 지고 있어도 되는데 그 순간을 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이 내어도 되는데, 그런 친구들과는 오래 편하게 만날 수 없다. 혼돈처럼 죽게 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 나이 예순 살을 이순이라 하여 귀가 순하다고 한다. 이것은 사려와 판단이 깊어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른이 어른답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사려가 깊고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오해하여 관계를 엉망으로 만든 노인도 많다.
 불유구라 부르는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고 한다. 이순을 지나 불유구로 가는 나이인 현재 나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 끊임없이 점검한다. 아직도 타인의 평판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나를 내가 잘 모르겠다.
 내게 필요 없는 군더더기는 과감히 버리듯 인간관계도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쉽게 안 된다. 옷 정리를 하듯이 마음 정리도 해야 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어른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나이답다는 것은 어른은 어른답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답게 멋진 어른이 되고 싶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몫은 아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혼돈 없이 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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