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열린글밭 칼럼 김미희 에세이
오평의 행운
  • 안산신문
  • 승인 2022.11.23 09:37
  • 댓글 0
김미희<소설가>

 

 11월 20일까지 주말농장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벌써 서리가 내려서 들깨나 방울토마토 등은 시들어버린 참이었다. 아직 덜 여문 무를 뽑고 배추를 뽑았다. 아기 손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상추도 다 땄다. 여름내 피고 지고를 해서 예쁘게 맞아 주던 매리골드도 아쉽지만, 꽃차를 만들기 위해 노란 꽃을 죄다 땄다. 가지도 뿌리를 뽑고 들깨도 뽑아서 밭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지난봄, 여름, 가을을 대여받은 주말농장에 ‘안녕’을 고했다.
  수확한 무와 배추를 오 등분 해서 나누어 담았다. 지인을 불러서 채소를 한 보따리씩 주었다. 도시 생활에서 내 손으로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을 처음 해 본지라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밭모퉁이에 유채꽃도 심고 채송화, 메리골드도 심었다. 한대앞역 철로 변에 있어 지역 앞에서 만나는 지인은 모두 주말농장으로 데리고 가서 자랑했다. 시골에서 아버님이 오셨을 때도 모시고 가서 보여 드렸다.
 주말농장을 구경한 지인은 손바닥만 한데 어설프게 심어 놓았다고 대놓고 비웃었다. 그래도 신이 났다. 그러면 어때? 전문가도 아닌데 밭에 갈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상추나 깻잎, 가지를 따오는 기쁨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다. 작년에는 신청했더니 떨어지고, 올해 겨우 당첨되어 처음으로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 본 것이다. 밭에 갈 때면 꼭 지인을 불러서 채소를 나누었다. 서너 집은 나눠 가질 만큼은 되었다. 내가 못 가는 날이 길어지면 지인에게 가서 상추를 수확해 가라고 했다.
 사실 땅이란 철로 변의 황무지 땅을 구획해서 나누어 준 것처럼 보였다. 거름기도 없고 돌은 너무 많아 분양받은 사람들이 모두 돌을 골라내어 밭 경계선 담장을 쌓을 정도였다. 조그만 도시농장에 들인 정성은 대충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거름을 갖다 붓고, 물을 떠다가 부어 주면서 농작물이 형태를 갖추어 갔다. 그러나 넝쿨 식물이나 키 큰 식물을 심을 수도 없었다.
 원래 황무지의 주인은 잡초와 풀벌레였다.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밭을 점령했다. 잡초는 열심히 뽑았지만, 살겠다고 달려드는 벌레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거니와 잡아 죽일 수도 없었다. 어린 배추는 심기만 하면 벌레가 다 갉아먹었다. 깻잎도 벌레가 다 먹고 토마토와 고추도 벌레가 주인이었다. 또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어도 걱정,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었다. 농사를 짓는 어려움을 그 작은 땅에서 절실히 체험했다. 그래도 벌레가 먹지 않는 상추나 공심채 같은 식물은 내년에도 심으면 좋을 듯했다.
 올해 시장선거에서 어떤 후보는 먹거리 안심을 위해 원하는 주민 모두에게 텃밭을 분양해 준다는 공약을 했다. 참신한 공약이었는데, 아쉽게도 당선은 되지 않았다. 먹거리가 너무나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기에 내가 직접 농사지을 수 있는 조그만 텃밭의 존재는 소중하다. 텃밭은 나눌 수 있고 땀 흘려 일하는 보람을 얻게 해준 기회였다. 내년에도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길 기도한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