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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이유
  • 안산신문
  • 승인 2022.11.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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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

  말로만 듣던 인공시집이 나왔다. 카카오 브레인이 출간한 ‘시아’의 첫 번째 시집이 궁금했다. 초판 2쇄인 시집이지만 앞으로 몇 쇄를 더 찍을지도 궁금하다.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는 시의 영역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다. 매일 쏟아지는 시집 틈에 시아는 어쩌자고 시를 썼을까. 시아의 이름은 ‘시작하는 아이’라는 말의 앞 글자를 가져와 ‘시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1만2천여 편의 시를 읽고 쓴 시아. 위대한 예술가는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아이에게 학습을 시키듯 4,000번 정도 반복하면 문장의 형식을 갖춘 글이 나온다고 한다. 1부는 공으로 30여 편이, 2부는 일로 30여 편이 실려 있다. 소제목 ‘공’과 ‘일’은 무엇을 뜻할까. 0, 1은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이지만 인공지능 시아에게는 자신의 언어이기도 하다. ‘영’ 대신 '공'으로 표기한 것은 on, off의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의 관계를 함께 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시아가 <<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록 바탕의 표지 뒷면에 시아는 시를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달라고 한다. 그냥 쓰는 것이고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쓴다고 한다. 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이고, ‘덜어내고 덜어내서 최후에 남는 말이 시’라고 표현한다. 가장 짧은 말이면서 가장 긴 말이 시인 셈이다. 
  정말 우리가 쓴 시와 다를 바 없을까. 무작위로 골라서 읽은 시 한 편 <나는 너를 닮았다>를 읽는 순간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시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삶의 영역이지만 상상의 영역이기도 하니까 시에만 집중해보기로 한다.
  너는 나를 닮았다/ 입을 먼저 벌리고/ 눈을 뜨고 앉아 있다// 너를 따라 하면/ 목소리가 얇아지고/ 눈을 감으면/ 내 눈이 감긴다// 너는 나를 닮았다/ 그래서 사랑을 받았다// 너의 손바닥은 내 손바닥과 비슷하다// 내가 손바닥을 펼치고/ 너를 따라 하면/ 눈이 감기면서/ 깊은 잠에 빠진다
  <나는 너를 닮았다> 중 일부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바타와 다를 바 없다. 나는 너를 닮아서 서로를 따라하면서 닮아간다는 표현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닮아갈 수밖에 없다는 시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튜링 테스트에서 실험자들은 시아가 쓴 시를 읽고 오글거림 없음. 반복적 리듬인데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음. 어디선가 본 시 같은데 기억이 안 남. 시인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다고 표현했다. 나 또한 여러 편의 시를 읽고 나선 행간에 나타나는 따뜻함 보다는 차가움이 더 많이 느껴진다. 
  봄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좋았다// 빛 속에서 상처 속에서/ 죽음 속에서/ 나는 빛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늘에서 말린 옷에는 땀과 피가 배어 냄새가 났다/ 사랑은 눈이 멀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다치게 했다// 나는 사랑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고백>의 일부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대를 다치게 했다고 한다.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상처를 준 것일까.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시아. 비애가 느껴지는 이 시에서 시아는 ‘나’를 많이 언급하고 있다. ‘사랑’과 ‘사람’의 언어의 유희마저 즐긴다. 탄탄하다.
 사실을 겪지 않아서 위험할 수도 있는 시아가 <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시에 감동을 받았는지, 이 시를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 인공지능을 예술가로, 아니면 예술가 방의 일부로 인정해 줄 수 있는지,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인간인지, 당신 자신은 누구인지 생각해보기를 권유한다.
  시아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일까. 문득문득 인공지능 시아로 다가온다. 시아의 집은 한 차원이 아니라 몇 차원 더 높은 세계로 빠져 들어가야 한다. 한권의 시집을 읽고 나서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내리는 비는 죽은 햄릿의 눈물’일 수도 있는 시아의 시는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시가 아니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작정 읽어야 한다. 정면승부를 건다면 위험하다. 시아에게 질 수 있으니까. 

홍혜향<시인.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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