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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칼럼]독불장군 없는 법이여
  • 안산신문
  • 승인 2023.01.04 09:33
  • 댓글 2
복진세<작가>

  “육시랄 놈! 뭣이 그리 급하다고 먼저 가서 제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지 원.” 아버지는 취한 몸을 가누며 사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한마디 하신다. “뭐라고요? 아버지?”, “아, 지어미 아비 눈물 쏙 빼놓고 부모 앞서서 가는 놈한테 하는 말이여!” 아버지는 건넛마을 박 첨지 댁 초상집에 다녀오시는 중이다.
  예전에는 동네의 대소사를 치를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도왔다. 초상이 나면 남정네들은 지관을 앞세워 산소 자리를 팠다. 아낙들은 부엌에서 문상객에게 대접할 음식을 장만했다. 마당에서는 돼지를 잡고, 과방에서는 제사상에 올릴 과일이며 과줄을 높이 쌓아 올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남자들이 관을 짰다. 솜씨 좋은 아낙들은 망자에게 입힐 삼베옷을 만들었다. 염을 하는 사람이 삼베옷을 곱게 입혀 입관하면은 초상집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아버지는 염(殮)장이셨다. 먼 길 떠나시는 분을 단장하고 삼베옷을 입혀주는 것이다. 솜씨가 좋았는지 동네 어르신들은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서 염을 부탁하고는 하였다. 어떤 어르신들은 아버지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아버지가 염하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버지 그 일은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세요. 염을 하시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래요.”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난들 하고 싶어서 하는지 아느냐. 궂은일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하는 것이여. 궂은일 할 사람이 없으면 그 많은 귀신 옷도 못 입고 그 먼 길을 떠날 텐데 그러면 쓰겠느냐.” 하신다. 어떤 때는 요령(搖鈴)을 잡고 상여 행렬을 이끄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목격할 때마다 나는 창피하여 친구들의 손을 이끌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타고난 농사꾼이셨다. 벼농사를 이십여 마지기 정도, 밭농사도 수천 평을 직접 부치셨다. 그러시라면 한시도 쉴 틈이 없었지만, 동네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일을 도왔다. “사람은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치면 마을의 대소사를 치르지 못할 것이 없다.”, “누구는 쉬운 일만 챙기며 생색을 내고 내 농사일 바쁘다고 마을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막상 우리 집 애경사 때는 누가 오겠느냐?” 하시면서 투정을 하는 나를 달래고는 하였다.
  아버지는 재 넘어 하천 변에 자갈밭을 일구어 수천 평을 직접 경작하셨다. 장마철만 되면 농작물이 범람한 물에 모조리 쓸려나가면 아버지는 또다시 밭을 일구었다. 나는 그러시는 아버지가 영 못마땅하였다. 나는 아버지를 바보라고 생각하였다. 불평하는 나에게 “사람이 욕심을 내면 쓰겠느냐. 하늘이 주는 것만 거두어 먹고살면 되는 것이여. 그래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는 굶어 죽게는 하지 않는 법이다!” 하셨다. 아버지는 자갈밭 한구석에는 참외며 수박 오이를 심었다. 큰물이 지나가면 아버지는 넘어진 줄기를 다시 세워주었다. 물을 길어다 진흙투성이인 잎을 닦아 주고 넘어진 줄기는 기둥을 세워서 묶어 주면 힘을 내서 제법 잘 자라 주었다. “실한 놈 몇 지게만 건지면 그만 이여.” 하셨다.
  밭에서 애써 기른 참외며 수박 오이 가지 등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푸성귀 귀한 줄 모르고 잘 먹고 살지만, 점방, 놋그릇 공장 사람들은 이런 거 모두 돈 주고 사 먹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애써 가꾼 채소를 이웃에게 한 아름씩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바보임이 분명하다. 푸성귀를 시장에 내다 팔면은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24색 크레파스며 책상 위에 근사하게 올려놓을 수 있는 전기조명 하나쯤은 사주고도 남을 텐데.’
  들일을 할 때 새참을 먹을 때면 고수레를 사방에 뿌리고 나서 일꾼들과 나누어 먹었다. 어떤 때는 내게 음식이며 막걸리를 동서남북으로 갖다 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귀한 음식을 왜 버리라고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식 냄새 맡고 굶주린 동물들이 달려들면 어쩌겠느냐. 미물들도 먹어야지 않겠냐. 세상에는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여.”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만 하시고는 제법 큰 뭉치로 음식을 떠서 갖다 놓으라고 하였다.
  가을에는 시루떡을 두어 시루 쪄내었다. 한 시루는 동네 집집마다 돌리고 한 시루는 우리가 먹었다. 먹기 전에 집 안 구석구석에 떡을 갖다 놓으라고 하셨다. 대문이며 우물가 화장실 헛간 등등에 떡을 나누어 갖다 놓고 난 다음에 우리가 먹을 수 있었다. “냄새 맡고 쥐새끼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어쩌겠냐? 너희들 물어 버릴까 봐서 그러는 것이여. 잔말 말고 갖다 놓고 와라.” 하셨다.
  내 나이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지난 다음에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이웃과 땅의 경계 문제로 송사에 매달린 일이 있었다. 마을 원로 어르신들이 모두 우리 땅이라고 송사를 마무리하였는데도 아버지는 옆집 사람의 요구대로 선뜻 귀한 땅을 양보하신 이유를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바보같이 사신 분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먼 길 떠나실 때 문상객들이 줄을 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바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길게 늘어선 만 장대를 보고서 그래도 아버지가 잘사시다가 가셨다고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가 가신 계절에 아버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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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기화 2023-01-05 09:33:33

    시골 부모님들은 자연이 준 만큼만 먹고 살면 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하늘이 하는 일인데 어쩔거냐? 라시며 원망도 없습니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최선임도 몸소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농부들은 어쩌면 과학자이며 생태학자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나이 60 넘어서 친정부모님들의 삶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ㅠㅠㅠ
    복선생님 가슴에도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늘 삶 속에서 살아있는 글이라 순간순간 울컥거리는 감동이 하루를 열고 닫게 합니다.   삭제

    • 김옥분 2023-01-04 10:33:32

      작가는 정말 훌륭한 아버지를 두신 아들입니다. 참 부러운 일이지요.작가의 아버지같은 분이 참 세상틀 이끌어 가신 분입니다.아버지의 삶을 글로써 잔잔하게 잘 표현해 주신 작가님 또한 훌륭하십니다.덕분해 넉넉한 한 분성인의 삶이 그려졌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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