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殺人魔)의 인권

류근원<동화작가>

살인마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마귀에 빗대어 비하하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연쇄살인, 대량살인, 쾌락살인, 아동살인 같은 흉악한 살인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세상을 경악 속으로 빠뜨린 살인사건, 지난해 8월 파주시 집에서 동거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공릉천변에 유기했다. 12월에는 음주운전 중 접촉사고가 난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준다며 집으로 유인, 살해 후 시신을 옷장에 숨겼다. 살인마의 이름은 이기영. 적용된 죄명도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등 7가지에 이른다.
이런 살인마의 얼굴 사진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현재 사진이 아닌 언제 적 사진인지도 모를 사진이었다. 댓글 창엔 ‘같은 사람 맞아? 무슨 법이 이래?’라며 흥분한 글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흉악범 신상 공개 때 얼굴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사진을 게재하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또한, 포토존에 설 때 절대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항의도 거세지고 있다.
2019년 말,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 공개 및 사진도 함께 언론에 배포했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일 뿐, 인권과 묘하게 얽혀져 지침이 바뀌었다. 피의자가 동의해야만 수의를 입은 상태의 머그샷(현재 사진)을 찍어 공개하고, 거부하면 신분증 사진 공개로 바뀌고 말았다. 피의자, 아니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포토라인에 설 때 마스크를 써도 경찰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살인마 이기영 역시 머그샷 공개를 거부했다. 이기영은 롱패딩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꽁꽁 가린 채 검찰에 송치되었다.
지난해 10월 기준, 신상 공개가 결정된 21명의 흉악범 중 머그샷을 공개한 피의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보복 살해한 이석준이 유일하다. 얼마나 잘못된 법인가? 이게 우리나라 법의 오점이며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법이다.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살인마의 인권은 어디까지일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이 생각난다.
이기영이 밝힌 동거녀의 시신은 처음 진술한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살인마는 유기 장소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며 “경찰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까지 했다. 살인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의 입에서 나온 선물이란 말은 검찰까지 희롱하며 갖고 논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프로파일러조차 사이코패스 검사 후 진단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내렸을까.
그가 선물로 지적한 장소와 주변에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아직 피해자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는 계속 거짓말 선물로 둘러댈 것이 분명하다. 살인마의 입만 바라보는 검경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루속히 시신을 찾아야 한다.
살인마에 관한 인권을 다시 손질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머그샷법을 활용해야 한다. 머그샷(mugshot)은 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의 은어이다. 이름과 수감 번호 등 필요한 개인 정보가 적혀있는 판을 든 정면 사진과 측면 사진 등으로 나누어서 찍는다. 키를 알 수 있게 눈금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명패를 들고 눈금판 앞에서 여러 차례 머그샷을 찍었지만, 복잡한 절차로 인해 흰 벽 앞에서 간소하게 촬영했던 적이 있었다. 머그샷법이 아니더라도 포토존에 섰을 때는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 공개가 안 되면 과거의 사진이 아닌 지금 피의자의 사진을 공개해야 마땅하다.
이제야 국회의원들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때에는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한 게 핵심이다. 그동안 실효성 없는 신상 공개로 인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욕을 얻어먹었는가? 살인마 같은 흉악범 신상 공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법 제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새해가 되어서도 서로 싸우기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들. 그 싸울 힘을 조금이라도 협치했더라면 진즉 법이 고쳐졌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뽑아놓은 의원들이 주야장천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니 새해가 되어서도 이래저래 국민만 힘들다.

안산신문 ansansm.co.kr

트윗하기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