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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기고]화천대유(火天大有)
  • 안산신문
  • 승인 2023.02.0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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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석<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

화천대유란 말이 있다. 주역의 64괘중에 14번째 역의 명칭이다. 괘명은 대유이다. 화천이란 태양을 말하며 대유란 크게 있다는 뜻이다. 하늘위에 불은 태양을 말한다. 하늘은 우리의 삶속에서는 지구의 대기권을 말함이다. 하늘이 파란 것은 한정되어 있는 지구 대기권이 태양 빛을 받아 산란으로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 지구는 대기권에 한정되어 있기에 유한한 것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런 하늘위에 태양이 있으니 화천이다. 
대유라는 말은 크게 소유한다는 말이 아니라 크게 있다는 뜻이다. 이런 뜻을 종합해서 화천대유를 직역해보면  태양이 크게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화천대유의 뜻은 태양의 속성인 무차별적이고 조건없는 아가페적 사랑의 빛을 지구로 보낸다는 특징을 담고 있다. 태양은 무한하게 공짜로 지구에게 열을 보내준다는 뜻이다. 유한한 삶속에 무한한 은혜가 상존한다. 돈으로 환산하자면 셀 수없이 어마어마해서 계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지구로 보내주는 그 빛과 열은 그 어떤 재벌이 벌어들이는 자산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지구상의 그 어떤 가치보다 크다. 모든 생명을 키우는 원천이다. 또 다른 각도로 보자면 악을 막고 선을 들어내며 하늘에 순종하면서 천명을 아름답게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태양이 모든 것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일테면 사람 사회에 올바른 영향력을 발휘하는 큰 일꾼이자 리더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태양같은 존재로 추앙받기도 한다. 인디언의 추장같은 존재이며 군자의 덕목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보편적인 통치행위로 태양의 역할을 비유하여 주역의 저자가 명명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크게 있다는 말을 소유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문명의 이기를 기준으로 금전적 개념으로 치환하는 버릇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단계속에서 물신주의에 삶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유라고 하면 태양이 주는 무한한 혜택이란 본래의 뜻으로 보지 않고 소유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선뜻 해석하게 된다. 오로지 먹고 사는 이해득실의 문제로 확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태양이 주는 무한한 혜택이란 대유의 좋은 뜻이 왜곡이 되어 크게 이익을 취한다는 뜻으로 오인하게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좁고 협애한지를 알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장동 부동산 관련 회사의 이름이 화천대유이기 때문에 더더욱 크게 이익을 남겨 먹겠다는 뜻이라고 오해를 하게 되었다. 
본래 주역이 뜻하는 14번째 괘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정반대로 오해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듯이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사안의 전체를 파악하고 살피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와 조작으로 잘못된 내용을 진짜인 것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조작이 정말인 것처럼 우리 생각안에 받아들인다면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주역은 점을 치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대개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역은 갑골시대부터 나라의 운명과 인생의 물음에 속한 것이며 역사의 중요한 사항들을 전해오는 모든 지혜를 모아서 답을 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람 미래의 길(吉)과 흉(凶)을 알아보고 싶어 점을 치는 것은 타당하지만 구체적인 이해득실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경제적인 금전의 문제에 국한된 비중은 별로 없다. 점이란 개인의 화복이나 이해득실, 小利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내면의 궁금증이나 반성, 반추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각종 도그마를 막고 있으며 편협한 자기중심적 주의 주장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도교나 유교도 주역을 바탕으로 동양문명을 이룬 철학과 학문이 된 것이다. 주역이라는 것은 어쩌면 인류가 발견한 정신 가치중에 최고의 기적이기도 하고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정신세계의 보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역은 그저 사람들의 이해와 화복을 알아 맞추는 기복적 행위로 치부되고 있다. 이 또한 본래의 주역이 전해주고자 하는 우주 만물 운행의 이치와 생멸의 묘법이 한갓 돈 몇푼에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아니면 말고식 헛말로 인식되는 불량한 세태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는 철학에서 말하는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물음과 회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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