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사흘 전은 무슨 날일까

류근원<동화작가>

대형마켓과 편의점에 선물용 사탕이 행인의 눈길을 잡고 있다. 화이트데이가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이트데이는 일본 제과 회사의 마케팅으로부터 시작한 상업적 기념일로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로 3월 14일이다.
이보다 사흘 전, 지나치기 쉬운 기념일이 하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정말 소중한 날이기도 하다. 바로 ‘흙의 날’이다. 흙은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가루가 된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이다.
흙의 날은 화이트데이 사흘 전인 3월 11일이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5년 농촌진흥청이 제정,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수많은 날 중 왜 3월 11일까? ‘3’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달로서 ‘하늘, 땅, 사람’의 3원과 농업, 농촌, 농민의 3농을 뜻하고, ‘11’은 흙을 의미하는 한자(土)를 풀면 십(十)과 일(一)이기 때문이다.
흙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동식물의 삶의 터전 역할을 하고 있다. 흙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이렇게 소중한 흙이 병들어가고 있다. 기후 변화로 흙이 사막화되고, 동토층은 흘러내리고, 시도 때도 없이 흙이 시멘트로 덮이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가뭄과 건조화로 사막화되어 죽어가는 땅은 매년 12만㎢에 달한다고 한다. 2020년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영구동토층이 녹아 50m 깊이의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고, 야쿠츠크 지방에서는 내내 얼어있던 지반이 녹으면서 건물들이 흔들리고, 도로가 뒤틀리는 무서운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의 면적이 넓어지면서 야생동물들은 그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다.
인류의 미래는 건강한 흙에 달려있다. 흙은 기후 변화를 예방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흙에는 약 2조5000억 톤의 탄소가 저장되어 있고, 영구동토층 툰드라에도 1조6000억 톤에 가까운 탄소가 저장돼 있다.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량이 7500억 톤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무려 5.5배에 해당하는 탄소가 땅속에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수학적 계산에 불과하다. 흙의 상태에 따라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유기물과 미생물을 함유한 건강한 흙은 탄소격리 능력이 매우 높다. 그러나 오염된 흙은 그 능력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학자들의 연구에 주목해야 한다.
화분 속의 식물만 해도 흙의 상태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흙 속 미생물이 많으면 화분의 식물이 눈에 띄게 잘 자란다. 작은 화분 속이 이럴진대 농작물의 생태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기의 고마움처럼 흙도 마땅히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때이다.
올해로 흙의 날은 8회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인지도가 낮은 게 현실이다. 옛날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에는 흙을 먹기도 했다. 일부 흙은 지금도 약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아직도 아이티 난민들은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다. 우리나라도 고려 시대 굉장한 가뭄 시에 백성들이 흙으로 국수를 말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의식주 걱정이 없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먹거리와 안식처를 제공하고, 거대한 탄소 저장고로 기후 변화 예방에도 이바지하며 지구 생태계 살리는 흙이다. 흙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당장의 편리함을 좇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식량난과 기후 변화에 큰 고통을 당할 것이다.
흙의 날을 맞아 기후 변화가 몰고 올 재앙을 대비해 대규모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는 흙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건강한 흙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흙에 대한 속담도 많다. 그 중 ‘개싸움에는 모래가 제일이다.’라는 속담이 인상적이다. 맞붙어 싸우는 사람을 말려도 듣지 않을 때 흙을 끼얹으면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국민에게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싸움질만 일삼는 국회에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흙이 펼쳐주는 꽃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화이트데이 사흘 전, 소중한 흙의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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