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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의 아침
  • 안산신문
  • 승인 2023.04.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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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새벽 여섯 시. 늪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여명을 받아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새들이 먹이를 찾아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중생대 백악기 시절부터 존재했다는 고대의 지점. 우포늪이다. 풍경이 내가 되고 내가 풍경이 되는 그곳의 새벽은 경이와 감동 그 자체였다. 다들 우포늪이라는 지명을 알고는 있지만 처음 와 보는 곳이라 감동이 컸다. 우리의 문학기행의 정점이 우포늪이었다.
우포늪의 역사는 1억4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낙동강과 우포늪은 바다와 먼 골짜기였다. 낙동강 하류의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가 생겼다. 당시의 우포늪 주변 지역은 공룡들이 주인이었다. 유어면 세진리에는 지반 침하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우포늪에는 가시연꽃을 비롯하여 노랑어리연꽃, 줄 등 800여 종의 식물류가 자라고 있으며 최근 복원하여 방사한 따오기와 큰고니, 흰뺨검둥오리 등 200종의 새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또 참붕어, 뱀장어, 가물치 등의 어류는 주변 사람들의 생업이 되고 있다. 수달, 담비 등 포유류, 양서류, 조개류까지 1천251종의 동식물, 곤충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에 걸쳐있다. 둘레만도 7.5㎞에 전체 면적은231만4천60m²에 이르는 광활한 습지다. 우포와 목포, 사지포, 쪽지벌 네 군데의 늪을 모두 합쳐 우포늪이라 한다. 국내 습지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소를 풀어 키우던 곳이라 ‘소벌’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한자식 지명인 ‘우포’로 바뀌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 우포는 소벌, 목포는 나무벌 등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우포를 차를 타고, 또는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리고 우포의 마지막 종착지 ‘정봉채 갤러리’에 들렀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우포만을 찍는 사진가이다. 갤러리 개장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우리의 도착을 문자로 알리자 사진가가 나오셔서 갤러리의 문을 열어 주셨다. 갤러리에서 그가 20여 년간 찍은 우포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특히 처음 보는 따오기의 정착 사진은 감탄과 간동의 서사였다. 그는 아침을 안먹은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간식거리를 다 내어 주시며 영상물을 보여주시고 대담을 했다.
예술은 밥이 되기 어렵다. 특히 우포의 사진만 20여 년간 찍는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정착한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연에서 치유하고 보상을 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겸손하고, 예술을 알며,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품격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포에서의 한나절을 통해 우리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품격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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