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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의 인생상담]사고
  • 안산신문
  • 승인 2024.05.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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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되돌아보면 불길한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날 나는 운전하면서 두 번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갈 때 한 번, 올 때 한 번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다니는 익숙한 길 위에서였다. 집을 떠나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문득 주위가 낯설었다. 네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착실히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때 나는 잡념에 빠져 있었다. 떠올리기만 하면 기분이 엉망이 되는 친구가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내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걸 알아챈 순간 내 입에서는 욕이 쏟아져 나왔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를 향한 것이었다. 그 욕이 나를 향했더라면 두 번째 잘못은 피할 수 있었을까?
 돌아올 때는 안산시청, 문화예술의 전당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틀어야 했다. 역시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사동 쪽으로 빠져나와 농수산물 센터 방향에서 꽃집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일차 선 위를 달리는 내게 이차 선 위의 배달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섬광처럼 짧은 순간 그 오토바이가 웬일인지 내 앞으로 불쑥 들어올 듯한 예감이 있었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지나쳤다고 생각한 순간, 내 오른쪽 차체가 가격당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이 일제히 곤두섰다. 모든 게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졌다. 내 머릿속이 바삐 움직였다. 서서히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뒤따르는 차들이 보도록 차 트렁크를 열었다. 오토바이가 넘어져 있고 중년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괜찮냐고 물었다. 남자는 괜찮다고 말하며 부축 없이 일어나 섰다. 그러나 오른 다리를 절뚝거렸다. 남자는 넋이 나가 있었다. 우리는 차들이 씽씽 달리는 위험한 곳에 서 있었다. 우리 때문에 멈춰 선 몇몇 차들이 차선을 바꿔 가버리면 우리는 한껏 속도를 내 달려오는 차들 앞에서 그야말로 무방비였다. 남자는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거느라 분주했다. 내 차는 뒷문 손잡이가 심하게 긁히고 그 아래가 움푹 꺼져 있었다. 거기서부터 앞쪽으로 오토바이가 쓰러지며 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사진을 몇 장 찍고 오토바이를 한쪽으로 이동하라고 시킨 다음 내 차도 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다행스럽게도 남자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남자가 가입한 보험 회사 직원이 사고 현장 조사를 위해 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며 길가에 서 있었다. 무척 추웠다. 나는 얇은 옷을 자꾸 여미어야 했다. 남자는 배달 오토바이를 탄 지 두 달이 되었다고 했다. 두 달이라는 기간이 오토바이를 익히기에 충분한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젊은 사람도 힘든 일을 나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하고 있었다. 사고를 낸 그도 사고를 당한 나도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사고 직전의 그 짧았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되었다. 속도를 더 내는 게 좋을지 줄이는 게 좋을지 망설였던 순간이 있었다. 그 오토바이가 설마 내 차선으로 들어올까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 남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계속 몸을 떨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내가 속도를 줄여서 그 남자가 살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과학적으로 이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 남자에게도 이 말을 했다. 그랬더니 남자가 경적을 울려 주시지 그랬어요? 라고 했다. 빌어먹을. 경적 울릴 짬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익숙하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재앙이 날아든다. 익숙함은 선물이 아닌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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