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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경청의 가치
  • 안산신문
  • 승인 2024.06.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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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웅<수필가>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듣는 행위는 다양해졌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닌 얼마 전가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하려면 상사를 대면하고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웬만한 기업은 모든 업무처리를 인터넷으로 한다. 재택근무를 하며 컴퓨터로 해결하는 회사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께 문안을 드리는 것도 예전에는 찾아뵙고 안색을 살펴 평안한지 가늠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도리였으나 이제는 전화 하는 것은 그나마 예의를 차리는 것이지 보통 문자나 카톡으로 소통한다. 웃어른은 물론 친구나 애인 간에도 입과 귀를 대신하는 이런 시스템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이 글을 올리게 되면 내 글은 뒤로 밀려 내용 파악을 못하고 지나가 버려 알리려던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것이 소통의 편리성이라고 해야 할지 부재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 친구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가도 바쁜 일상에 폐가 되지 않을까 망설여져서 그냥 내려놓게 되는 일도 있게 된다.
듣는다는 의미의 청(聽)를 들여다보면 좌변에 귀 이(耳)와 임금 왕(王)자가 우변에는 열 십(十),눈 목(目), 한 일(一), 밑변에 마음 심(心)자가 합쳐져서 한 글자를 이루고 있다. 임금은 듣기를 우선해야 하며 일을 살피기를 열 개의 눈으로 보듯 하고 한 마음으로 일관되게 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듣는다는 글자로 청취(聽取)와 경청(傾聽)이 있다. 의미는 좀 달라 청취는 그냥 들리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방점이 있고 경청은 귀를 기울여서 성심껏 듣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청은 들 때 귀 뿐만 아니라 오감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는 이의 소리뿐 아니라 생각. 표정. 몸짓. 마음과 기분까지 살펴야 진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자성어 중에 이청득심(以聽得心) 이라는 말도 경청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임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중요한 소통의 도구로 쓰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아 소통의 부재를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다툼들도 결국은 상대방의 의중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내 의견만 옳다고 내세우는데서 오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 또한 우리의 소통 방법이 낳은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의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견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펴나가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듣는 것이 첫 관문이리라.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미덕은 경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과학이 발달하며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발명되어 호사를 누리고 있는 한편,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다양한 소통방식과 경청을 어떻게 접목하여 현명한 사회생활을 해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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