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열린글밭 칼럼 김희경 경제칼럼
침묵의 미학
  • 안산신문
  • 승인 2024.06.12 10:23
  • 댓글 0
김희경<경제학박사>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는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는다” 이 글은 1945년 유태인 수용소에서 발견된 이름없는 유태인이 죽음을 앞두고 벽에 쓴 글이다. 스코틀랜드의 작곡가 마크 밀러(Mark Miller. 1969~)는 이 글을 토대로 나는 믿네(I believe)를 작곡했다. 우리는 매우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불의와 불법이 기승을 부린다.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메아리만 가득하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신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라고 질문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한 시골 성당에 예수님의 동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소원을 빌었다. 그 성당의 문지기는 예수님의 동상이 서있는 자리에 자기가 서 보고 싶었다. 소원을 빌던 어느날 음성이 들렸다. 네 소원을 들어 줄테니 한 가지만 약속을 해야 한다. 
누가 와서 어떤 행동이나 기도를 해도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문지기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문지기는 예수님의 동상이  되고 예수님은 문지기가 되었다. 어느 날  도박을 즐기는 부자가 왔다. 그는 도박을 하러 가는데 돈을 잃지 않고 많이 따기를 빌었다. 기도 후에 부자는 갔는데 돈 가방을 그냥 놓고 나갔다. 문지기는 알려주고 싶었지만 약속 때문에 침묵했다. 조금 후에 가난한 농부가 왔다. 자기 아내가 중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치료비가 없으니 도와달라고 빌었다. 농부가 기도를 마친 후 돌아가려다가 돈가방을 보게 되었다.  농부는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돈가방을 들고 나갔다. 
문지기는 돈가방의 주인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잠시 후에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가려는 청년이 왔다. 안전을 위한 소원을 빌러왔다. 청년이 기도를 하려고 할 때 돈가방을 놓고 간 부자가 들어왔다. 돈가방이 있을리 없었다. 부자는 다짜고짜 청년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았다. 청년은 모른다고 사정을 말했지만 분이 날대로 난 부자는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청년은 지금 바로 가지 않으면 배를 탈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것을 본 문지기는 참을 수가 없어서 돈가방의 행방을 말해주고 말았다. 청년은 배를 타게 되었고, 부자는 돈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의 노하신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당장 내려 오라고 했다. 
문지기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그렇게 예수님이 화를 내실 정도로 잘못은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은 상황을 바로 잡아서 평화를 이루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못이 크다. 네가 해결한 것보다 침묵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몰랐다. 
부자는 어차피 그 돈을 도박장에서 다 날릴 돈이다. 그 돈이 농부에게 갔더라면 농부의 아내를 살릴 수 있었다. 더욱 잘못된 것은 청년은 그 배를 타지 않았으면 살 수 있었는데 너의 개입으로 배를 타게 되고 배가 침몰하여 죽게 되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겠느냐? 인간들의 과도한 개입이 정의를 살리기 커녕 일를 그르게 한다”고 했다. 신은 침묵 중에 일하신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잠언17:28)”우리는 말이 많은 세상을 살고 있다. 침묵을 영어로 Silent라고 하는데 경청이란 영어는 listen으로 같은 알파벳이 무순으로 혼재되어 있다. 침묵과 경청은 사촌쯤 된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명력을 지닌다. 
프랑스의 사제와 문필가인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Joseph Antoine Toussaint Dinouart. 1716~1786)은 침묵의 기술을 썼는데 침묵을 언어를 자제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언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했다. 침묵은 단순이 입을 닫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말과는 다른 표현방식을 의미한다. 침묵은 말의 전제조건이면서 잉태 공간인 것이다. 침묵은 고전 수사학에서 악티오(actio)라 칭하는 몸짓의 수사법에 뿌리를 둔다. 개인주의와 나르시시즘이 기승을 부리고,
 말과 글을 통한 자기 표출행위가 극성으로 치닫는 요즘 사회에 침묵을 언어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로 조명하는 시각은 매우 중요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말이 지나치게 많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줄 수도 있고,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다. 자신의 말에만 집중하다 보면 주의 깊게 경청하지 못할 수 있다. 침묵의 의사표현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