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기은 외 11인, 그림 박정섭, 상상)

오랜만에 만난 글벗은 글을 쓰며 우도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일 년에 몇 주만 가족들과 지인을 만날 겸 육지로 올라오는데, 문득 함께 책을 읽던 벗들이 생각났다며,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우리를 만나주었다.
그리고 우도의 땅콩보다 고소한 선물을 가방 한가득 담아와서 나눠주었다. 바로 이 책 <나의 작은 거인에게>이다.
언제나 동시는 쉽지만 어렵다. 누구나 아는 쉬운 말로, 누구나 쉽게 따라 올 수 있는 박자로 이야기하지만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이 모자라면 읽기도, 쓰기도 그 어떤 글보다 어렵다. 그러니까 꾸준히 만져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동시마중 레터링 서비스 『블랙』에 작품을 수록한 시인 가운데 12인의 동시 60편을 모아 출간된 동시 선집이다. 이 레터링 서비스처럼 매주 일요일 아침 메신저 앱으로 미발표 신작 동시가 배달된다면 멀리 사는 친구 같던 동시가 좀 더 가까운 벗처럼 느껴질 것 같다.
가까이서 바라보고, 향기 맡기 좋다. 그런데 그 시들이 책으로 출간이 된다면 이제는 손안에서 조몰락조몰락할 수 있게 된다. 동시 촉감놀이다. 자꾸 손이 간다. 귀엽디 귀엽다.
여전히/사방팔방/돌아다보는/치자 씨//화분에서 옮겨 심을 때/치자 향까지 통째로/옮겨 심기는 쉽지만//치자를 제자리에 앉히긴 힘들어//그치만 똑바로 앉았다 치자//꽃은 모두가 앞이니까(김영경 ‘똑바로 치자’ 부분)
치자꽃이 두리번거린다. 향기는 그대로 품었지만, 어디를 봐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다. 자연스레 하얀 치자꽃이 1학년 교실 속 아이의 얼굴로 바뀐다. 아이가 사방팔방 돌아다 봐도 괜찮다. 향기는 어디서나 난다. 꽃이 모두 앞인 것처럼 아이들도 못난 부분은 없다. 깜찍한 깨우침이다.
그래도 난 알아//쯔비쯔 쯔비쯔/노래하는 건 나무라는 걸//봐! 새는 꼭 나무에서만/노래하잖아//뭐? 하늘에서 노래하는 새도 봤다고?/그럼 노래하는 하늘도 있나? (김영경 ‘노래하는 나무를 보았어’ 부분)
노랫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는 잘 모른다. 다들 노래는 새가 한다고 했지만, 나무도 노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늘도 노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새도 나무도 하늘도 노래하는 세상은 얼마나 행복할까? 참인지 거짓인지를 따지지 않아도 쯔비쯔 쯔비쯔 노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다 된 것이다.
60편의 동시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친구로 만드는 동안 우리의 마음은 위로받고, 즐겁게 놀기도 하며, 상상의 힘을 키우기도 한다. 동시를 통해 길러지는 이해심과 공감 능력은 아이들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들도 길러야 할 것들이 많다.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많을지도 모른다.
큰 거인이라면 무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거인은 나를 지켜주는 편안한 친구 같다.
고요한 종소리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작은 거인 같은 존재, 그런 게 동시가 아닐까. 이제 친구를 부르는 기분으로 편지를 써보자. 우리의 작은 거인에게.

김현숙<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