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울었다. 91세 아주머니가 노래 부르는 영상이었다. 인간 극장에 나왔던 가수 박서진의 영상을 몇 번 보았더니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이 영상을 띄운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수안보 온천 노래자랑 대회에 나와 조용필의 ‘상처’를 불렀다.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아주머니는 꽃무늬 원피스 위에 분홍 가디건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조금 구부정하게 선 아주머니는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조마조마 했다. 아주머니는 첫 소절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들어갔다. 그러나 초반 한두 군데에서 박자를 놓치고 음정이 불안했다. 내 우려와 달리 노래는 곧 부드럽게 이어졌다. 노래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도 무리 없이 절정을 소화해 냈다. 당신은 내 사랑, 영원한 내 사랑, 외로워 마세요.
아주머니의 노래에는 그 연세의 여성이 낼 수 있는 음색에다 고유의 실력이 어우러져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큰 울림이 있었다.
경숙이가 생각났다. 경숙이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였다. 그때 소풍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차를 타는 게 아니라 걸어서 갔다. 전교생이 모여 함께 소풍을 갔다. 둘씩 짝을 지어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 시간은 넘고 두 시간은 넘지 않는 거리였다. 시내에 있던 학교와 가까운 어느 오름이었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소풍을 갔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가서 어떻게 놀았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영화의 한 컷처럼 절대 잊히지 않는 건 길 위의 한 장면이었다.
경숙이는 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노래를 불렀다. 쉬지 않고 내내 불렀다. 경숙이의 음색은  맑지 않았다. 창을 하는 사람들처럼 조금 탁했다. 그리고 어떤 노래든 경숙이가 부르면 슬프기 짝이 없었다. 지금도 경숙이가 부르던 ‘천안 삼거리’가 떠오른다. 원래 흥겨운 노래인데도 경숙이가 부르는 ‘천안 삼거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오직 아스팔트 길만 보며 걸었다. 옆에서 걷는 친구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오직 그녀의 노래에만 귀 기울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얘는 나중에 크게 되겠구나.
고등학교 이후로 경숙이를 본 적이 없다.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지금도 저녁밥을 짓다가 문득,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때문에 문득, 경숙이가 생각난다. 그렇게 노래를 잘했는데 경숙이는 끝내 가수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 아냐면 가수가 되었다면 티브이에 나왔을 테고 그러면 내가 알아보았을 거니까.
나는 왜 아주머니의 노래에 경숙이를 떠올렸을까? 아주머니의 노래에는 숨길 수 없는 나약함이 있었다. 긴 호흡이 어렵고 목소리에 탄력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바로 그 이유로 노래가 더 아름다웠다. 생의 비탈길을 내려가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아주머니를 그려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경숙이처럼 주변에서 재능있다는 소리를 꽤 들었을 것이다. 경숙이보다 서른 살이나 더 많은 아주머니. 생의 첫 무대이자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무대. 그러나 아주머니는 결국 무대에 섰다. 첫 무대에서 부른 노래로 사람들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자기 재능을 꽃피운 것이다.
경숙이도 어느 날 무대에 오른 모습으로 나타날까? 수십 년 전 아스팔트 길 위에서 내게 그랬듯 무대 위에 올라 노래로 사람들을 눈물짓게 할 수 있을까? 자기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나를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무작정 글을 쓰고 있는 나. 나도 언젠가 아주머니처럼 꽃을 피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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