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둘러본 특기할만한 곳은 목포의 박화성 기념관 전주의 최명희 <혼불공원> 부안의 신석정 생가와 시비공원과 같은 부안의 옛 名妓 梅窓공원 강진의 茶山초당과 김영랑 생가 광산의 박용철 생가 그리고 고창의 미당 생가와 기념관 등이다.
나는 22억을 들여 조성했다는 梅窓공원에 경탄하면서 그 커다란 무덤에 술을 올리고 또 뿌리기도 했다. 梅窓은 중앙무대에의 화려한 등장이 없었고 시골 구석에서 기구한 운명을 오열하면서 연모의 열정을 노래한 시인으로서 黃眞伊와는 전혀 다른 참인간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茶山에서 나는 시조를 읊으면서 「목민심서」를 집필한 그의 유덕을 기렸으며 未堂에 의해 시단에 빛을 본 나로선 그 생가 복원과 기념관 신축에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부호였던 박용철과 김영랑의 생가에선 영화로이 살았던 옛모습을 떠올리니 울타리로 된 대숲의 대잎이 바람에 섞어이는 소리가 오히려 애잔하게 들려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리고 혼불공원은 자리를 잘 잡았건만 어째서 그 무덤이 애기무덤처럼 초라했는지 괜히 애달파 나는 술을 뿌렸었다. 끝으로 덜 알려진 茶山의 시 「哀絶陽」은 꼭 소개하고 싶다. 당시의 정황이 눈에 선해서.
갈밭마을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라
관아의 문 내닫으며 하늘보고 통곡하네
출정나간 남편 못 돌아옴은 그럴법도 하다지만
옛부터 남자 양기 자른다는말 들어보지 못했노라
호남평야는 어딜 가나 풍년이 넘실거려 배부르다. 옛날부터 숱한 난리를 겪었고 또 빈부의 격차가 심해 恨 서린 판소리의 고장인데다가 5.16군사독재이래 유독 식민지처럼 불평등에 시달려온 울분을 아직껏 덜 삭인 흔적들이 엿보이는 듯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드높은 파란 하늘이 내려앉아 고요한 강물과 섞이어 잔잔히 흐르고 있음은 분명 평화가 아니라 그들의 자신감이 피부에 와 닿았다. 강 언덕을 가다 보면 보리밥 타는 냄새 청솔가지 타는 냄새가 가맣게 풍겨 오던 우리 어린 날은 이제 거기 없다. 깊은 한숨소리를 안고 강물이 잠들지 못할때 靑孀은 다듬이 돌을 들여놓고 험난한 삶을 두들겼던 시절로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지 않는다. 사랑도 이제는 부딪침이지 마냥 기다리는 그리움이 아닌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종이삼아 시를 쓴다」는 李太白의 호연지기를 본받아 호남의 하늘에다 약간의 여백을 남기고 즉흥시를 써서 채우고 싶었다. 지방색이 아닌 겨레가 하나되는 순수 하나에 詩心을 다듬고 묶어서. 시 낭송회에서 많은 시를 읊은 것도 그 까닭이었다.
이번 기행에서 나는 오랫만에 눈뜨자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일과를 마치는 경건함에 젖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기도가 범사를 주님의 은혜로 돌리고 감사하는 것을 전제하고는 실은 청이 너무 많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을 피곤하게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행한 善行을(때론 남이 한 걸 본받겠다는 다짐으로라도) 밝히고 그리고 도움을 청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마지막 아침식사는 오전 7시였다. 나는 이번 행사를 주도한 목사에게 부탁했다. 식사 전의 기도가 끝나면 1분 정도 말할 시간을 달라고. 쾌락을 얻었다.
내가 한 말은 「한짝 신발도 마저 벗어 준 간디」. 간디가 어느 지방 순행을 마치고 기차에 올랐는데 서둘다가 그만 한짝 신발이 플랫홈에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 그걸 주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한짝 신발을 벗어 홈에 내려 놓았다. 놀란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간디는 만족스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만일 어떤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짝을 줏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소중하게 쓰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가끔씩이라도 이런 선행을 고하면서 주님께 청을 드려야 몰염치가 아니잖겠는가 하는 생각이였다. 물론 좌표는 주님을 닮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이번기행은 여러 모로 값졌다. 무엇보다 좋은 「만남」이었다. 좋은 만남이란 「맛나는 만남」이라는 뜻이다. 기억하고 싶고 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였다. 살아 있는 우리끼리의 만남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 갔던 故人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시 찾아 가고 싶으니 이게 「맛남」에서 오는 것이 아니랴.
특히 마지막 묵었던 선교센타 서규석 목사 내외를 꼭 다시 찾아 뵙고 싶다. 글쎄 아침 먹고 내외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건만 한창 귀가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실은 오늘 새벽 어머니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같은 건물 안이었는데 일부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멋」이랄까 「맛」이랄까? 남들을 먼저 배려하는 그 마음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하나만으로도 이번 「만남」은 「맛남」이였던 것이다. 내 가슴이 감동을 찾아 나서는 길목을 발견했으니 생각할 수록 쉼없이 벅차고 설레인다.
- 이기진 안산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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