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내려 갈수록 가을의 기운은 더욱 넘쳐 아예 겨울이 접근하기 어려운 듯 보인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겨울 속 가을을 감상하며 진도에 이르니 이곳은 아예 사계절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壯觀)을 이룬다. 빈 논은 겨울이 분명한데 곳곳에 푸름을 자랑하는 파밭은 완연한 봄이요 여름이다. 그 가운데 여기저기 가을은 자신이 주관자라도 되는 듯 선혈처럼 진한 단풍을 뽐내며 서 있다.
내가 한 원로목사님과 찾은 진도 지산면 보전교회 마당에서도 몇 그루의 나무들이 그렇게 강렬한 가을모습으로 서 있었고 나무 곁에는 폐차장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봉고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검게 그을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맞은 목사님의 사택은 지붕이 낮고 납작한 것이 달동네 판자 집을 연상케 하였다. 누추하다는 말이 맞을 방에 앉아 사모님이 가져온 차를마시며 초면에 처음들은 이야기들은 나를 또 다른 겨울 속의 가을로 들어가게 하였다.
“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골수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올해 45세라는 시골 농부모습의 강희정 목사가 무릎을 잘라도 살 가망이 없다는 연골육종이라는 무서운 암 진단을 받은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7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결혼을 하겠느냐?”
소개한 사람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는 이 여자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강목사는 그때부터 그는 섬에 있는 미자립 농촌교회인 지금의 보전교회를 맡아 가난을 천혜(天惠)로 알고 아내를 십자가로 알고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내의 다리를 자르지 않고 고쳐 보려 고물 봉고차를 몰고 부산으로 대전으로 전국병원을 누볐지만 역부족이었고 무릎은 뒤웅박처럼 점점 켜져 갔다. 그이 눈물겨운 이야기의 결론은 승리였다. 3년이상 살기 어렵다는 병원진단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르지 않으면 급속히 온몸에 전이된다는 다리를 11년이나 자르지 않다가 기적적으로 완치케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보다 8년이나 연하인 사모 이주희, 비록 그녀가 불면 날 것처럼 약해 보이고 가진 것 없어 가난한 촌부 같을지라도 창백하도록 예쁘기가 달빛 같고 말하는 것이나 대접하는 모습이 천사같다. 그녀의 오늘을 만들어 낸 남편 강희정 목사, 그는 냉혹하고 무정하기가 겨울 같은 세상에서 물러서지 않고 빛을 발하며 버티어 선 가을나무가 아니던가.
결혼한 지 3년도 안된 부부가 사방에서 이혼소송을 하고 있고 26년 이상을 살고도 이혼하는 부부가 급증하고 있다는 작금의 겨울 같은 상황 속에서 물러서지 않는 가을처럼 살아 갈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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