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가을 하늘이 바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품속을 파고든다. 길가에 서있는 프라타나스의 잎새가 푸르름을 잃고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은행나무 잎새도 노랗게 물들어 간다. 얼마 있지 않으면 휘-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우수수 떨어져 보도 위를 뒹굴겠지… 가을이다.
가을은 왔는데 하늘 끝 만리(萬里)를 울어 예며 날아오는 기러기의 행렬을 이제 도심(都心) 하늘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개 가을을 느끼는데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오곡이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느끼는 넉넉한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이제 머지않아 닥쳐올 겨울을 걱정해야하는 마음과 떠나온 고향을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생각하는 서글픈 마음일 거다. 그러나 이런 쎈티멘탈한 감상보다는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덕목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겸손함과 넉넉한 마음=황금빛으로 누렇게 물든 논으로 가본다. 벼이삭을 보니 알곡이 많이 달린 이삭일수록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밭으로 가본다. 수수도 조도 모두 마찬가지다. 알이 찰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그런데 우리네 지도층 인사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슬려 가며 살아가려고 한다. 지위가 높을수록 악수하는 자세가 다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세우고 손만 겨우 내민다. 그러면 그 앞에 선 지위가 낮은 사람은 허리를 깊숙이 꾸부리고 황송한 듯 높은 분의 손을 공손히 잡는다. 사진만 봐도 지위가 높고 낮은 사람을 얼른 구별할 수 있다.
어디 외형적인 모습뿐인가? 내면적으로는 더욱 심각하다.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으로 가득찬 독불장군으로 내가 아닌 남과는 절대로 화합하려 하지 않고 타협보다는 싸우려는 전투적 자세를 취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한심한 모습이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사제 서품 50주년 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할 어려운 때 나라가 자꾸만 흩어지고 대립하는 쪽으로 가고있다.』고 개탄하면서 특히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 지도자들 제발 싸우지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질타 섞인 주문을 하고 있다. 가을은 왔는데 우리의 지도자들은 「익을수록 그리고 알이 많이 찰수록 머리를 숙이는」 평범한 자연의 진리를 언제나 깨우칠까?
2.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가져야=초여름 가뭄이 그렇게 극심했는데도 금년 농사는 풍년이라고 한다. 풍년이 들었는데도 농민들이 울상이란다. 쌀이 남아돌아 가격폭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내년부터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하고 쌀의 양보다 질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올 3월말 기준으로 집계한 중식(점심식사) 지원 대상 초·중·고교생이 전국적으로 16만 4000여명 전체 학생의 2%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1997년 1만천여명이던 것이 IMF관리체제후인 98년 13만 9천여명 99년15만 1300명으로 상승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안산시 원곡동 758번지 「예은 신나는 집」에서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담당 사회복지 지도사는 『결손가정의 어린이들로서 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가 없거나 점심은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으로 때우지만 저녁은 집에 가도 먹을 수가 없어 찾아오는 50여명 어린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생활지도와 학습지도를 해 주고 있다』면서 『IMF이후 늘어난 결손가정은 부자(父子) 결손가정이 75% 모자(母子) 가정이 25%가 된다』고 말했다.
결손가정의 사연도 갖가지다. 그 중에서 김모양(11세)의 사연은 참으로 눈물겹다. 「3년전 IMF로 실직한 아버지가 일용직으로 근무하던 중 전주에서 2만 5천볼트 전기에 감전돼 한달 간을 식물인간으로 입원해 있다가 사망했다. 그때 어머니는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한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통원치료도 못 받은 채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사고 보상금으로 전셋집을 마련하고 어머니가 벌어오는 매우 적은 수입으로 동생 둘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 얼마전 둘째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자신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둘째 딸의 치료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몸이 아플 때가 많아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형편이다.」『요즘 들어 저소득층 가정의 경제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데 민간 지원액은 크게 줄어들어 「신나는 집」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담당 사회복지사는 호소했다.
가을은 왔는데 경제 불황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지원의 손길은 줄어든다고 한다. 이제 우리 모두가 어려운 이웃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다같이 몸과 마음이 풍성해지는 가을을 보내자.
- 이 재 중 안산신문 논설위원 -
<안산신문 webmaster@ansanilbo.com>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