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만에 첫 길이 열리자 두 번째는 7년 만에 왔다. 첫 번째는 하늘로 갔지만 이번엔 두 발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불과 십몇 년 전, 8.15 때면 어김 없이 수많은 청년학생들과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남과 북은 만나야 한다’며 휴전선으로 향했다. 그리곤 곧 폭력 연행되어 감옥으로 끌려갔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세 번째는? 수시로 만나기로 선언문에 명시했으니, 이제는 남북정상회담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62년 전의 분단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그 분단이 가져온 상처는 역사의 갈피갈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의 굽이굽이, 생각의 마디마디에 아프게 새겨져 있다. 남녘 사람들이 북녘 사람들 머리에 뿔난 줄 알았던 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모 대선 후보가 최근, ‘내가 일주일에 영화를 서너 편은 본다. 그간 말을 안 해온 이유가 김정일이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해서였다’라고 웃지 못할 인터뷰를 한 건, 심한 경우이긴 하지만 그 상처가 과거만의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그 상처를 치유하고 상생의 길로, 통일의 길로 나갈 길이 환하게 열렸다.
7년 전 6.15선언은 불과 열 줄 남짓한 5개 항의 내용이지만, 그것이 가져온 7년 간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 공단, 평양 방문 등으로 북녘 땅을 밟은 사람이 200만에 육박하고 있다. 휴전선을 넘어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 남북문제를 바라보는데 실질적인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번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의 의미는 실로 거대하다. 8개 항과 부속 2개 항에 매우 구체적이고 전향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우선 정상회담 수시 개최 뿐 아니라, 총리회담, 국방부 장관과 인민무력부 부장 간 회담 정례화에 합의하였고, 올 11월로 1차 회담을 못 박았다. 최초로 의회 협력 부분을 명기하였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의 격 상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경제협력의 질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것으로 만들 것이다. 경협에서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함)의 원칙을 세운 것은 그간의 상호주의 등등의 소모적 논쟁을 잠재우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충분하다.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키로 한 것의 의미 또한 각별하다.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백두산 관광 등은 통일 시대의 새로운 징표가 될 것이다.
종전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회담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큰 걸음이다.
이 모두가 군사적 충돌과 대립의 원천을 없애고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 통일로 가고자 하는 지혜와 의지의 산물이다.
물론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이런 저런 입장이 다양하다. 그만큼 7천만의 삶과,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자기 집단만의 이익을 위한 정략적 접근으로 평화와 통일, 번영으로 가는 큰 걸음에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딛고 여기까지 왔는가?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제쳐두고 어디서 번영의 길을 찾을 것인가?
당연하게도 선언을 이행하고 통일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만은 아닐 것이다. 걸림돌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문제가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끼리’의 정신, ‘자주통일, 민족번영’이라는 목표를 견지한다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모두가 사심을 접어두고 귀중한 선언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자. 더불어 안산에서도 북녘 도시와의 자매 결연 등, 선언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추진하자.
최영석 기자 news@woor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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