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선진화와 실용을 국정운영의 모토로 내 걸고 출범했다. 혹자는 신선하다고 한다. 출범한지 갓 보름 남짓인 만큼 그 신선도에 대한 섣부른 평가나 예단은 경솔할 수 있다. 다만, 낡고 구태의연한 여의도식 정치를 탈피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공언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던 이들에겐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한국정치 1번지인 여의도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보스(청와대)와 패거리(당권) 중심의 7~80년대식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공천이 친이냐, 친박이냐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결국 편 가르기 즉, 패거리 정치의 재판이다. 사실 과거 YS와 DJ 시절의 제왕적 보스정치는 군사독재라는 엄혹한 정치 환경에서 파생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강고한 상대에 맞서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한나라당 공천 파동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정치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대의명분조차도 벗어던진 이전투구에 가깝다는 점에서 후진국형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87년 체제를 분기점으로 정치적 민주화가 본 궤도에 들어 선 지금에도 선진화 장막 뒤의 보스에게 ‘민의의 대변’이 생사여탈을 맡겨야 하는 작금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더욱이 그 파장이 여의도를 넘어 안산을 비롯한 경향 각지의 지역사회를 들쑤셔놓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연례행사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안산을 들여다보자. 한나라당의 안산 4개 선거구 공천은 끝났다. 민주당의 공천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매금으로 싸잡아 예단할 수는 없으나 안산에서도 낙하산 공천바람은 거칠어지고 있다. 박순자의원이 단원 을 선거구에서 공천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 선거구는 모조리 낙하산이다. 불과 서너 달 사이에 안산에 내려오기 전까지 안산과는 아무런 연고도 인연도 하다못해 소주 한 잔 나누지 않았던 인물들이 공수부대처럼 지역정치판을 싹쓸이하겠다는 형국이다.
당연지사이겠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중앙당에 재심 요청을 하거나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는 등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어쩌다 안산이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반월공단 일터에서 상가에서 도로에서 아파트 부엌에서 오늘의 안산을 일궈낸 주인들을 호구로 본 것일까? 주객이 전도된 기막힌 결과에 대해 ‘해도 너무 한다’며 예사롭지 않게 들끓는 민심을 팔짱끼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누구는 지역 이름으로 출마한 이들의 인물과 실력이 함량미달인 결과라고 하고, 누구는 선진화시대를 맞아 지역정치 풍토를 일신할 수 있는 계기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수혈론을 내세우며 불가피함을 인정하자고 한다. 일리 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주장들은 결정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다.
정치 공천은 하향식 공천과 상향식 공천 그리고 절충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향식 공천은 정당의 보스와 계파가 좌지우지하던 후진적 선거의 전형으로 필연적으로 줄 세우기와 상납 그리고 그 결과물로 각종 부정과 부패를 양산했다. 이런 비민주적 공천 관행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개혁적 공천 요구가 상향식 공천이며, 이는 지난 17대 총선을 통해 당내 경선 등을 거치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1인 2표제를 통한 정당 비례대표와 ‘민주적 국회’를 세우기 위한 상향식 공천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거수기 국회의원’을 ‘민의의 대변인으로서 국회의원’이라는 선진국형 정치로 대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도도한 실험이었다. 즉, 상향식 공천은 우리나라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제도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순리인 셈이다.
따라서 안산을 비롯해 경향 각지에서 흉흉하게 일고 있는 낙하산 공천 파동은 첫째, 민주주의 기본 정신과 가치 그리고 절차를 뒤집는 쿠데타에 다름 아니며 둘째,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자 둥지인 공화정을 짓누르는 억압이며 셋째, 지역사회의 성장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지혜와 의지를 모아내는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려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과 정치의 선진화가 풀뿌리 민주와 자치에 기반에 성장하는 나무라는 점에 공감한다면 말이다. 그 풀뿌리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불완전한데다 기량도 출중치 못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해 그래서 미덥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무릇,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과 대안과 비전은 ‘안에서 강구’하는 것이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지역사회에서 만큼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함께 공유한다면, 나눔과 섬김으로 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려 한다면, 이제 역사의 순리를 뒤집으려는 흐름과 민심을 배반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짱을 떠야 하지 않겠는가? 여와 야를 떠나.
열린시민교육센터 안산아침논단 박호열사무국장
최영석 기자 news@woor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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