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따로 행정’→‘모둠 행정’ 변화해야

삶의 공간인 도시의 장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데는 도시 전체에 대한 총괄적 접근보다는 주민들의 ‘작은 생활권’ 단위에서부터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구단위계획 등 일상생활권 중심의 계획제도 만으로는 주민들의 삶과 생활기능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서 광역정부로, 다시 지방정부로 하달되는 지금의 ‘하향식 도시계획’은 생활권 단위로 묶인 주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기 힘들다. 따라서 큰 틀의 도시계획을 짜나가는 것에는 작은 틀의 마을 단위 목소리를 수용할 필요가 있고 이의 대안으로는 마을계획제도의 도입이 꼽힌다.

현행 안산시 도시기본계획조례는 지구단위계획을 짤 때 법적으로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틀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단위계획이란 게 주로 재건축사업 위주로 치우치고 실제 주민들이 참여해 도시의 밑그림을 그려나간 사례가 전혀 없다는 것은 이의 반증이다. 공청회 등도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고 있다.

이에 반해 ‘마을계획’은 작은 생활권 단위인 마을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요소와 사회·경제적인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역주민이 발의하고 집행하는 ‘비법정계획’이다.

도시기본계획이 수립주체가 행정기관인 것과는 달리 마을계획은 주민이 직접 수립하기 때문에 ‘민관협력형 도시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민들이 세운 마을계획이 도시관리계획과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는 행정적 절차에 적극 반영되면 ‘따로따로 행정’이 ‘모둠 행정’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 주민 자발적 마을계획에 행정 지원 필요

주민들이 참여하고 교류하는 장으로서 마을계획은 가장 유효한 주민참여 제안제도이다.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한 주민의 요구라기 보다는 개발기간을 단축하고 특정개발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많은 현 주민제안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하지만 주민이 자발적으로 마을계획을 발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행정지원이 필요하다. 행정정보를 적극 공개하고,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의 노력이 그것이다.

단순히 시범모형을 만들어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치중하거나 행정위주의 ‘틀에 맞춘’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는 마을계획의 취지나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따라서 도시기본계획~도시관리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마을단위 계획을 수립해 이를 반영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이런 제안을 위한 안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논의가 활발하다.

안산시 도시기본계획에 생활권계획을 반영하는 것을 관련조례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안산YMCA 류홍번 사무총장은 “마을계획은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의 중간단계에 위치하는 비법정계획”이라며 “주민제안제도로서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도록 관련조례를 개정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 나은 삶의 공간, 도시의 미래를 위해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의 계획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 토목 위주 탈피 지속가능 도시계획 보완

도시계획을 짜는데 있어 전문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도시계획 상임기획단’의 구성도 제안되고 있다. 토목공학적 도시계획에서 탈피해 경제적, 문화적,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도시계획의 지속가능성을 키우도록 인력과 시스템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사동 90블럭 개발사업, 돔야구장 건립, 대단위 주상복합건물 신축 등 장래 안산시의 청사진을 완전히 뒤바꿀만한 대형 개발프로젝트들이 하나같이 행정기관 위주의 ‘하향식’ 도시정책으로 추진되다보니 이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타당성 검증이 충분하지 못하면 중복개발과 난개발로 인해 도시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도시계획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검증하도록 도시전문가와 시스템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도시계획 상임기획단’ 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 안산시 도시계획조례는 이의 구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다.

도시계획 상임기획단은 도시기본계획 및 도시관리계획 등의 사전검토를 통해 도시계획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도시계획에 관한 기획과 정책을 연구하며, 도시계획위원회 요구사항에 관해 조사 연구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다.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침체에 빠진 상권을 되살리겠다며 안산시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광덕로 테마광장 조성사업은 이런 우려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계획단계에서 주민이나 전문가, 상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접근하다보니 생태적, 문화적, 공간적, 도시미관적으로 통합적인 고민이 떨어지고 토목공학적인 개선계획에만 쏠림현상을 보이는 때문이다.

따라서 민관협력 시스템으로서 주민와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는 도시계획전담기구를 설치해 상시 운영할 필요성이 제안된다.

◇ 마을지원센터 - 행정기관 파트너십 개선

안산시는 지난해 3월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개소해 마을별 생활공간 개선과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관련 조례를 만들어 이를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선부2동 석수골 마을이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2008년 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전국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는 등 적지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내부 시스템과 외적 네트워크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산시의 마을만들기 지원은 행정기관 내 특정부서만의 업무로 치부되고 있고 관련 전문가 확보 등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보니 일부 마을단위 개선사업을 지원하는 수준에 활동영역이 머물고 있다.

마을단위 계획과 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현장 중심의 프로그램을 활성화 해야하고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바탕으로 신뢰감을 쌓아야 한다. 때문에 센터의 실무인력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네트워크로 구성해 주민과의 결속력과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바라보는 행정기관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행정기관의 다양한 부서와 영역이 연관된 만큼 특정부서만의 업무로 한정짓는 것에서 벗어나 파트너십의 범위를 넓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행정기관과의 관계에서도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의 독자적 영역과 활동을 인정해 이의 체계화를 보장해줘야 하고 지원센터는 독자적 역량을 갖춰 연도별 목표를 설정해 사업을 추진하는 등 활동의 폭과 깊이를 넓혀나가야 한다.
● 인터뷰 문정희 안산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운영위원장 /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

“소수의 사람들이 입안해 결정하고 다수의 주민과 시민에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도시계획은 도시기능의 왜곡을 부르기 쉽습니다. 충분한 설명과 설득, 그리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정희<사진> 안산마을만들기 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은 도시계획에 있어 일방적 강제가 아닌 합의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이 생활하는데 불편한 게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도시 청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안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는 그는 현 도시계획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것에도 명확하다. 지금의 시스템과 운영체계로는 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싣기 어렵고 대안제시나 합의도출에 한계를 띨 수 밖에 없다는 쓴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를 영입해 심의를 한다고는 하지만 행정기관이 결정한 사항이나 방향에 대해 ‘들러리’를 서는 모양새가 적지 않습니다. 민간 전문가의 의견과 견해를 수용하고 반영하려는 파트너십을 키워야 합니다”

문 위원장은 “주민이 참여하는 합리적인 도시계획을 짜야 5~10년 뒤의 안산시 청사진이 어떻게 변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문제점도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도시계획 수립과정에 전문가 검증절차를 충분히 밟고 시민들도 공동체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보일 때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위한 밑그림은 ‘어떻게 하면 삶의 질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상통합니다. 삶의 질을 고민하는데 있어 행정기관이나 시민 모두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됩니다”

강형민 기자  khm@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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