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공장에 놀러 갔다가 프레스에 손가락 두 개가 잘려나갔지요. 한동안 저도 모르게 오른손 악수는 피하게 되더라고요. 고무로 만든 의수까지 꼈는데도 주눅이 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다녀요. 어쩌면 이 손가락 때문에 더 밝게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안산중앙병원 자산관리팀 전기실 김연진(41·사진) 주임은 참으로 꽉 찬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안산중앙병원 노동조합 지부장을 역임하며 민주노조의 주춧돌을 견고히 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더분하게 어울리며 사랑을 주고, 그만큼 사랑을 받는 그는 이름 대신 ‘이웃집 친절한 김씨 아저씨’로 통한다. ‘안산 반월중학교를 빛낸 100인’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머리는 나빠도 이름 하나는 잘 외운다”라는 사람 좋은 김씨 아저씨는 실제로 500여명의 전국 동료 이름을 다 외울 만큼 한국산재의료원에 애정이 깊다.

뜨거운 심장으로, 살기 좋은 일터 만들기

모르긴 몰라도 그는 떠나간 동료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제일 다정다감하게 받는 남자일 것이다. 직원 한 명 한 명을 제 식구 돌보듯 감싸 안는 그의 오지랖은 이미 정평이 자자하다. 해고된 동료의 집까지 찾아가 술잔 기울이며 힘을 북돋워주고, 순환보직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동료들의 외로움에 귀 기울인다.

“제일 어린놈이 지부장 ‘씩이나’맡아 조합원들이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웃음). 그래도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빈말 안 하기로 유명한 김연진 주임은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일단 자신의 입에서 나간 이상은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작은 신뢰 하나하나가 모여 관계를 견고하게 만든다고 말하여 그는 눈에 보이는 계산보다는 똑똑한 진심으로 동료들과 손잡고 ‘살고 싶다’고 했다. 한국산재의료원 기술직협의회 회장으로 재임중인 김연진 주임은 요즘 근로복지공단과의 통합 과정에서 안정적이고 살기 좋은 직장으로 기반을 잡기 위해 한참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진료부서가 병원의 브레인이라면 우리 전기설비 부서는 심장부라고 생각해요. 의사와 간호사들이 안전하게 진료하고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니까요. 병원이라는 거대한 혈관 구석구석 혈액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일합니다.” 병원 곳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산악회, 스보인(스키·보드·인라인), 축구 동호회, 테니스 동호회 등 각종 사내 동호회의 총무를 맡아 연락병이자 심부름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그는 “타고난 돌쇠 스타일이라 총무가 천직인가 보다”는 너스레로 또 한 차례 웃음꽃을 피웠다. 테니스의 ‘테’자도 모르는 사람이 총무로 활동하며 얼굴 벌게질 일도 많다.

“축구는 그나마 죽어라 뛰면 중간은 가던데, 테니스는 기본기와 구력 없이는 여간 힘든 운동이 아니거든요. 오로지 출석과 성의로 승부하고 있어요.(웃음) 저 때문에 우리 테니스 동호회 실력이 하향평준화 되는 일은 막기 위해서라도 어서 실력을 쌓아야지요.”

바쁜 일정을 쪼개어 김연진 주임은 전국 최대규모의 ‘산타페 동호회’ 의장을 맡아 전국 11개 지역 4만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있다. 월 1회 동호회 모임을 진두지휘하며 병원 홍보도 톡톡히 한단다. 차량의 외부는 크게 꾸미지 않았어도 그가 사랑하는 음향 시설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단장한 것이, 속이 꽉 찬 그와 다르지 않다.

“인간은 호기심이 강하고 창의성이 풍부한 동물이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행복을 느낀대요. 저는 너무나 인간적인 남자라서(웃음) 적극적으로 신세계에 도전하는 하루하루가 미치도록 행복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빠듯한 일정에도 가정에 소홀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탁월한 시간관리 능력 때문이다.

“제 아무리 아침에 일찍 일어난들 정작 일어나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일할 때 최선을 다해 확실히 일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만 모아 활용하면 충분히 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더라고요.”

마흔한 살의 꿈

무릉도원이 따로없다. 애마에 올라 Holloween의 음반을 조작하는 그의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퇴근 후 자동차 안에서 젊은 날 인생의 전부이던 메탈 음악을 듣는 행복은 더 말해 무엇할까.
시나위, 백두산을 비롯해 그가 사랑하는 뮤지션들의 심장을 울리는 비트는 그에게 더할 나위없는 에너지원이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작은아들 준승(13)이가 지난 겨울 비로소 의사에게 ‘이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병원 치료에 종지부를 찍은 것도 빠뜨릴 수 없는 힘이 된다. 아들의 음악치료를 위해 손을 다친 이유로 한동안 접었던 기타도 다시 들었다.

준승이는 드럼을, 그는 기타를 연주하며 매 주말 특별한 가족 공연이 펼쳐진다. 화양연화.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말한다. 사람 좋고 재능 많은 마흔한 살의 김씨 아저씨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서슴없이 고백했다. 자신의 몸을 들들 볶아대며 그가 연주하는 인생은 여전히 뜨겁다,

김선광 기자  ace1357@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