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초부터 엘사랑 공동체 아이들을 위한 학습도우미 활동을 하고 있는 상록경찰서 류한오 이경이 초등학생들의 공부를 지도를 해주고 있다.

“전경이나 의경이라고 하면 여전히 좀 딱딱하고 경직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많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고부터 이런 인식이 싹 변했어요. 요즘은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이웃집 형으로 불리는 걸요.”

안산상록경찰서(서장 우문수)에서 근무하고 있는 류한호(전경ㆍ21), 이상윤(공익근무ㆍ 21) 이경의 하루는 요즘 새로워 졌다.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모든게 낯설고 어렵지만 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만 떠올리면 마음이 들뜨고 힘이 난다. 매일 짬짬이 시간을 쪼개 인근에 사는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면서 생긴 변화다.

상록경찰서는 지난 9월 초부터 소속 전·의경들이 환경이 넉넉하지 않은 초·중학생들을 모아 뒤처진 학업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했다. “전·의경들이 무료하게 군 생활을 하기 보다는 서민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좋은 봉사활동을 해보자”는 뜻이 모이면서다. 선뜻 류 이경과 이 이경이 이들의 '학습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섰다. 두 사람은 각각 초·중학생 5명씩을 맡아 하루 2시간씩 뒤처진 과목을 지도하고 있다.

우선 상록경찰서의 일상풍경이 바뀌었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재잘재잘 제 집 드나들듯 이곳 정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이들은 상록경찰서 인근에 위치한 '엘사랑 공동체'(원장 김은숙)에서 생활하고 있는 초·중학교 학생들이다.

초등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류 이경은 부산이 고향으로 광주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인 창평고를 졸업하고 지난 5월 입대해 7월부터 상록서에서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다. 중학생을 담당하고 있는 이 이경은 대학에서 1학년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6개월간 유학생활을 하다 올 8월 공익요원으로 입대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초등학생은 주중에 전 과목을, 중학생은 국·영·수를 중심으로 류 이경과 이 이경으로부터 학습지도를 받고 있는데, 공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요즘은 형처럼, 오빠처럼 서로의 친근감이 가족처럼 더 커졌다. 

◇ 아이들 뿐 아니라 경찰 모두 행복 커져

학습도우미 활동을 하면서 변한 건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교사로 나선 류 이경과 이 이경은 물론이고 상록경찰서 내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새로워졌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엘사랑 공동체 학생들은 한 달 새 성적이 쑥쑥 오르면서 너나없이 자신감을 찾고 있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현응(가명ㆍ초등2)이는 이곳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한글조차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고 덧셈 뺄셈도 많이 서툴렀다. 하지만 이젠 좀 더듬거리기는 해도 책 읽기에 흥미를 붙였고 더하기 빼기도 곧잘 하게 됐다. 또래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는 가영(가명ㆍ중3)이는 외톨이처럼 지낼 때가 많았지만 이젠 공부에 새로운 취미를 붙였다. 큰 오빠처럼 편한 선생님을 만난 건 더 큰 행복이다.

류한호, 이상윤 이경 두 사람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갓 군 생활을 시작해 모든 게 낯설었지만 요즘은 매일 오후 '제자'들을 만날 생각에 하루가 즐겁고 행복해졌다. 고된 훈련도, 엄격한 내무 생활에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학생들의 발길이 잦아들면서 경찰서 내부의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 초등학생 2학년부터 중학생 3학년까지 10여 명이 매일 경찰서를 오고가면서 생긴 변화다. 이들을 동생처럼, 자녀처럼 대하고 만나다보니 직원들의 표정도 한층 평화롭고 부드러워졌다. 

엘사랑 공동체 학생들을 위한 학습도우미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던 박형주(경비작전계장) 경위는 “학습도우미 봉사가 불우학생 뿐만 아니라 전ㆍ의경과 경찰 모두에게 큰 행복의 선물을 주고 있다”며 “이들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것 외에도 다양한 체험학습 등을 함께 진행하며 한 가족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선광 기자  ace1357@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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