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노는 아이들이 모여 동아리 '틈'을 만들었다. '틈' 9월 활동 주제를 놓고 회의를 진행하는 아이들.

학교가 끝나자 마자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은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책을 읽는다. 도서관 밖에서 들리던 재잘거림은 곧 소곤소곤 귓속말로 변하고 어떤 아이는 누워서 또 다른 아이는 높다란 자리에 아슬아슬 매달려 책을 읽는다. 자신이 개발한 세상에서 가장 편한 독서법이다. 이곳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는 약속만 지키면 된다.

열두살 소은(가명)이도 도서관을 드나드는 참새들 중 하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가방을 챙겨 도서관으로 온다. 도서관에서 학원시간까지 책을 읽는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소은이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도서관으로 전화한다.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 돌봐주는 도서관은 든든한 이웃이다.

부천에는 이런 마을 작은 도서관이 13개다. 복사꽃도서관은 동화 읽는 학부모 모임이 3개나 되고 올 3월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동아리 ‘틈’이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도서관에서 노는 아이들 ‘틈’

도서관을 자주 드나드는 어린이들이 모여 올 3월 동아리를 만들었다. ‘틈’에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25명이 참가한다.

여름방학엔 도서관 친구들과 함께 환경 캠프를 열어 서울 난지도 캠핑장으로 2박3일 여행도 다녀왔다. ‘틈’ 활동의 원칙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이라 프로그램부터 식사 준비까지 모두 ‘틈’ 아이들 스스로 준비했다.

마침 작은도서관을 방문한 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틈’ 정기모임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주제는 9월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것. 노는 것인지 회의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소란함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소란함 속에서도 9월 활동 주제는 미술로 정하고 미술과 관련해 주별 진행할 프로그램도 뚝딱 뚝딱 결정한다. 한 주는 미술과 관련한 ‘끝말잇기’ 놀이를 진행하는 것도 포함되고 부천에 사는 진짜 화가 선생님도 만나러 가기로 했다. 피카소를 만나러 가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피카소는 돌아가셨다’는 사서 선생님의 말에 아깝게 접어야 했다.

‘틈’ 회의는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끝낸다는 말 도 없이 학원가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도서관을 떠나면서 끝이 났다. 어른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족해도 참 많이 부족한 모임이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강요 없이도 스스로 모임에 참가하며 즐기고 있었다.

복사꽃도서관 염범석 관장은 “요즘 애들이 얼마나 바쁘고 힘들게 사는데 도서관까지 그 힘든 생활에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아이들이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활동이니 더디 진행되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며 틈 활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 어르신 생일 잔치며 어린이 꿈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동네 엄마'역활을 담당하는 '엄마랑 동화랑'회원들.

복사꽃도서관에는 ‘역사문화탐험대’ ‘엄마랑 동화랑’ ‘파란도깨비’ 등 3개의 주부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2005년에 만들어진 ‘엄마랑 동화랑’은 매주 1회씩 도서관에 모여 어린이 동화책을 읽고 독서토론 활동을 진행 한다. 하지만 ‘엄마랑 동화랑’활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은도서관 서고 정리 자원봉사를 비롯해 독서캠프 진행, 매주 수요일 동화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매달 한번씩 홀몸 어르신을 찾아가 생신상을 차려주는 동네 며느리 역할도 도맡아 진행한다. 또 회원들은 결손가정 어린이와 자매 결연을 맺고 책과 편지를 선물하는 ‘꿈 서포터즈’로 활동한다. 이만하면 ‘우리동네 엄마’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동아리 회장 이선희회장은 “처음엔 순수하게 책 읽는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지역사회로 옮겨가게 되어 다양한 봉사활동도 진행하게 되었다”며 “봉사활동이 힘들지만 안하면 오히려 서운해 하는 회원들이 생길 만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활동이야 말로 작은 도서관이 지역에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관협력으로 세운 부천 작은도서관

작은 도서관은 2000년 이후 보육과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 문화 형성을 도서관에서 실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생기나기 시작했다.

특히 부천은 작은도서관 설립과정부터 지방 정부와 민간기구의 협력이 잘 이루진 모범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다. 이 민관협력의 장을 마련한 곳이 바로 부천의제 푸른부천 21 산하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였다.

부천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는 2001년 결성되어 부천시 도서관 관련 조사사업을 펼쳤다. 이 조사작업을 통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공립작은 도서관으로 확장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은도서관 지원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천시는 공립 작은 도서관 설립 시 5,000만원을 지원해 주고 매년 운영비로 4,200만원에서 5,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복사꽃도서관도 심곡복지관 안에 작은 문고를 확장해 2005년 새 단장한 것이다. 현재 회원이 3,000여명으로 대부분 인근지역 주민과 학생들이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 보는 곳이 아니라 정보를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신옥경(심곡본동 거주)씨는 “공공 도서관에 가면 책을 얼른 빌려서 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여기서는 편안하게 책도 보고 가끔 친구도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도서관에 있는 책을 인터넷으로 타관대출 신청해 작은 도서관에서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책이 도착하는 요일이면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작은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은 다양한 독서관련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며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지원을 받고 공공도서관은 프로그램 홍보와 참여 등 작은도서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서 두 도서관 모두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작은도서관네트워크는 2004년 작은도서관협의회를 만들면서 해체하고 지금은 협의회가 공공도서관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천시립도서관 작은도서관 관계자는 “각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아 2013년까지 2개의 마을 작은 도서관을 더 만들 계획이다.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만족도와 참여도가 높아 이들이 도서관 이용인구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뷰 - 복사꽃필 무렵 작은도서관 도지현 사서

△ '복사꽃필무렵 작은도서관' 개관부터 8년간 도서관을 지켜오는 도지현 사서.

복사꽃도서관에서는 ‘동화야 놀자’(유아 책읽기) ‘슬라이드로 보는 동화’, ‘꼬마가 들려주는 동화’를 진행한다.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진행면서 작은도서관이 제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사꽃 도서관 도지현 사서는 작은 도서관의 미래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작은 도서관 운영자들이 모이면 가장 큰 고민이 ‘재정적인 자립상태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운영비를 지방정부에서 지원받기 때문에 작은도서관 자율적인 프로그램 진행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도 사서는 “우리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후원회 성격의 ‘도서관 친구들’을 모집한다. 회원들 중에서도 ‘도서관 친구’로 등록해 매월 일정한 금액의 후원금을 내기도 하고 기업체에 스폰서 의뢰를 한다. 이 비용으로 틈 활동 지원 등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전체 예산에 비해 미비해 도서관 친구들을 활성화해서 재정적인 자립도를 높이는 목표다”고 한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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