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처음 접하는 새로운 역사관으로 눈을 번쩍 뜨게 했던 해방 직후사 [태백산맥]. 대학시절, 숨을 멈추고 집중하게 만들었던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항쟁사 [아리랑]. 사회인이 되고 나서 접했던 격동의 60-80년대사 [한강]. 이 서른두 권, 원고지 5만 쪽이 넘는 대하소설들은 우리 나라 현대사를 민초들의 입장에서 꿰뚫는 서사이다. 학생들부터 성인까지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그 방대한 분량에 기가 질린다면, 작년 10월 출판된 따끈따끈한 한 권의 책 [허수아비 춤]을 우선 읽어보길 권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 선생님의 오랜만의 소설이다. 그의 작품은 머리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발로 뛰어서 찾은 현장에서 나온다. ‘몸으로 쓴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 그래서 공허하지 않고 힘이 있다. 허수아비 춤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 좀 특별하다.

우선 글쓰기의 형식이 독특하다. 책 속 서평을 쓴 평론가는 ‘파노라마적 풍자’라고 했다. 골든패밀리의 일원인 주인공들이 번갈아가며 만연체로 자기주장을 펼친다. 로얄패밀리인 회장의 속심은 만연체 서술로 표현된다. 그런데 그 긴 문장들이 또 숨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생생한 입말과 속담들이 재미를 더한다.

이 책 소개 글의 제목 ‘착해라, 자발적 복종’은 [허수아비 춤] 마지막 장의 제목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고 말한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책 읽은 독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내 화와 모욕감을 참을 수 없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 그것도 지배적인 현실인 것에 대한 아픔일 것이다.

몇 년 전 “삼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떠오른다. 매년 한두 건씩은 터져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가, 한참 만에 싱겁게 보석, 또는 집행유예나 무죄, 꼬리자르기로 끝나버리는 재벌 비리 수사가 떠오른다. ‘아`’ 신음소리가 나온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홍연아 안산열린교실 대표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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